목회자 가운의 배경
일요일 아침 교회다. 강단 위 목사가 가운을 걸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 격조 있는 교회구나.” 양복 차림이라면? “편안한 교회네.” 청바지에 운동화라면? “세련된 교회인가 보다.” 우리는 목사의 옷에서 그 교회의 ‘분위기’를 읽는다. 그런데 정작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목사는 가운을 입는가? 왜 어떤 교회는 그것을 고집하고, 왜 어떤 교회는 벗어던졌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패션의 문제가 아니다. 목사의 옷은 그 교회가 “목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선언이다.
검은 가운의 탄생
이야기는 1521년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있던 사이 그의 동료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Andreas Karlstadt)가 선을 넘었다. 성탄절 예배에서 예복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성찬을 집례한 것이다. 제단의 화려한 전례복은 로마 가톨릭 사제직의 상징이었고, 그것을 벗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신학적 표현이었다. ‘우리는 종교개혁으로 복음의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 더는 사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루터는 격분한다. 그는 곧장 비텐베르크로 돌아와 긴 장백의(長白衣, alb)와 영대(領帶, stole), 제의(祭衣, chasuble)까지 갖춰 입고 강단에 올라섰다. 예복을 입는 것이 로마교회의 잔재라서 문제라면 예복을 벗는 것도 마찬가지로 ‘율법’이 된다는 것이 루터의 논리였다. 루터는 이것을 비본질적 사안(adiaphora), 즉 ‘구원과 무관한 것’의 영역으로 보았다. 입어도 좋고 벗어도 좋다. 다만 ‘벗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순간 그것도 역시 복음의 자유를 침해하는 또 다른 율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칼뱅과 츠빙글리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제네바의 개혁자들은 목사를 사제가 아니라 ‘말씀의 교사’로 이해했고, 그에 걸맞은 옷을 택했다. 당시 대학 교수들이 강의할 때 입던 검은 학자복이 그것이다. 오늘날 ‘제네바 가운(Geneva gown)’이라 불리는 이 옷의 탄생 배경은 의외로 소박하다. 화려한 전례복을 벗고 학교 교수의 박사 가운을 입은 것, 이것이 “나는 제사를 드리는 사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개혁교회의 자기 정체성이 이 옷 한 벌에 담긴다.
존 녹스(John Knox)가 1570년대에 제네바에서 스코틀랜드로 이 전통을 가져가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회중교회 등 광범위하게 새로운 개신교 전통으로 퍼져나갔다. 개혁교회 목사의 표지처럼 되어 버린 ‘제네바 가운’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옷의 신학적 고향이 어디인지 알린다.
그런데, 이거야 말로 흥미로운 역설이다. 설교 가운은 본래 ‘반(反)예복’으로 태어났다. 사제의 화려한 전례복을 거부하고 일상의 학자복을 택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반예복’이 다시 ‘예복’이 되었다. 검은 박사 가운은 더 이상 일상복이 아니었고, 목사만 입는 특별한 옷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팔뚝에 박사를 상징하는 세 개의 띠는 학위 취득 여부와 무관하게 목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이 되었다. 이를 카를슈타트가 본다면 뒷목 잡지 않았을까.
루터교의 선택, ‘우리는 칼뱅주의자가 아니다’
루터교회의 예복 역사는 이 지점에서 독특한 길을 간다. 루터파 신학자들은 설교가운을 칼뱅주의의 상징으로 경계했다. ‘그것은 (개혁파의) 제네바 가운이지, (루터파의) 비텐베르크 가운이 아니다’라는 말이 이 거부감을 요약한다. 루터교회는 중세의 전례복인 장백의(alb), 영대(stole), 제의(chasuble)을 계속 유지했고, 특히 스칸디나비아의 루터교회들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이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루터교회의 본산인 독일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1817년 프로이센 연합(Prussian Union)이 일어나면서 정부는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개혁교회와 루터교회를 강제로 통합하게 된다. 이 정책은 루터교 목사들이 입던 장백의를 벗기고 대신 검은 설교가운을 입혔다. 루터교 신학자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예복이 비본질적 사안이라 해도, 국가가 강제로 벗기거나 입히는 것은 비본질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며, 루터파 목사들이 개혁파의 제네바 가운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날 만한 일로 받아들였다. 루터교회의 신앙고백문서 중 하나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변증서에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례와 의식을 즐거이 유지한다.” 예복을 유지하는 것도 복음의 자유이기에 이를 빼앗는 것은 복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논리였다.
이 대목에서 루터의 비본질적 사안(adiaphora) 원칙이 갖는 양면성이 드러난다. 예복은 구원과 무관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입으라고 강요해서도, 벗으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유란 한쪽으로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복의 등장
20세기 들어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과 오순절 운동이 확산되면서, 아예 다른 흐름이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검은 가운조차 ‘형식적인 종교’의 잔재였다. 목사는 성도들과 동등한 형제이니 특별한 옷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양복 차림의 목사, 나아가 캐주얼 차림의 목사가 이 계통에서 나왔다.
이 선택에도 나름의 신학이 있다. 만인사제설(萬人祭司說)을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면 목사와 평신도를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모든 장치가 불필요해진다. 가운이든 양복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지 옷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한 가지 간과된 전제가 있다. “목사도 성도와 같다”는 만인사제설의 원래 의미는 ‘성도는 모두 모두 사제다’. ‘성도는 서로가 서로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뜻이지, ‘사제직 자체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루터가 만인사제설을 주장하면서도 목사의 직분과 예복을 유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러지셔츠
예복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성직셔츠(clergy shirt), 곧 성직 칼라(clerical collar)가 달린 셔츠다. 한국에선 ‘로망칼라’라는 이름이 더 일반적이다. 이 옷의 유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많은 사람이 흰 목띠가 달린 검은 셔츠를 보면 “가톨릭 신부님”을 떠올린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도 이 옷 입고 어디가면 모르는 사람이 와서 “신부님!”하고 반가이 인사하고, 가톨릭 병원에 다녀올 때면 종종 주차장 차단기 앞에서 요금 지불도 않고 통과하라며 인사까지 받을 정도다. 그런 분들에게 ‘나 목사요’라고 하면, ‘신부님도 아니면서 로망칼라를 왜 했냐’면서 눈을 흘긴다. 어디 그뿐인가. 기독교 방송에 이 옷 입고 출연했다가 영상 댓글에 난리가 난 일도 있다. ‘개신교 방송에 어디 가톨릭 신부를 출연시켰냐’며 ‘방송국 제정신이냐’고 말이다.
그런데 오해 마시라. 실제 역사는 이렇다. 19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Church of Scotland) 목사 도널드 맥러드(Donald McLeod)가 탈착 가능한 흰 목띠를 고안해 셔츠에 부착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성직셔츠의 시초다. 즉, 개신교 목사가 만들어서 개신교 목사들이 먼저 입었다.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로 퍼져나간 뒤 로마 가톨릭이 이를 수용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 특히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일이다. 가톨릭 사제들이 기나긴 수단(cassock) 대신 간편한 성직셔츠를 일상복으로 채택한 것은 불과 60여 년 전이다.
수단은 반팔도 없고, 원피스인데다 단추 갯수도 예수님의 나이를 상징하는 33개고, 팔에는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의미한다며 다섯 개의 단추를 달아 놓았다. 상상해 보시라. 한여름 땡볕에 갑작스런 화장실 호출이 오면 이거야 말로 고문이다. 서른 세 개의 단추. 사제의 평상복이 이렇다보니, 장로교의 성직셔츠는 그야말로 신세계일 수 밖에 없다. 20세기 초 젊은 가톨릭 사제들부터 대유행이 시작하더니 결국 전통을 중시하는 로마가톨릭이 1960년대 전례개혁을 하면서 이 옷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순서가 완벽하게 뒤집혀서 인식된다. 한국에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약 100년 먼저 들어왔고, 로만칼라를 한 사제의 이미지가 먼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목사들이 성직 셔츠를 입기 시작한 건 1960년대가 훨씬 지난 다음부터이니, “목사가 왜 신부 옷을 입느냐”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심지어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는 “로만칼라는 비성경적이고, 로마교회의 사제직을 상징하는 것이니 제정신인 목사라면 입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소동의 하이라이트는 2000년에 벌어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자신들이 디자인한 목사 예복 몇 점과 함께 클러지셔츠를 특허청에 의장등록했다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이의신청을 제기하여 한기총의 등록이 취소된 사건이 있다. 이유는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당연한 일이다.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복식을 특허청에 “우리가 만들었다”고 등록하려 한 것 자체가 역사적 무지가 빚어낸 코미디였다. 어떤 종파의 전유물도 아닌 옷을 세속 법의 힘으로 독점하려 한 이 사건은 한국 개신교가 자신의 역사적 뿌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적 변용이다. 유럽과 북미에서 성직셔츠는 대체로 검은색이다. 감독(bishop)이 보라색을 입는 정도의 변주가 있을 뿐이다. 보라색은 고난의 의미라서, 보라색 클러지 셔츠의 원래 의미는 자신이 맡은 교회가 고난 받을 일 또는 순교할 일이 생기면 내가 1번 타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순교자 예비 1번이 그런 옷을 입는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 성직셔츠에 알록달록한 색이 들어가고, 무늬가 추가되고, 허리선이 잘록하게 재단된다. 순교자 예비 1번이 멋쟁이 1번으로 변질하곤 한다. 그런 셔츠를 입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 개신교 목사다. 원래 성직자의 ‘개인’을 숨기기 위해 고안된 옷이 한국에서는 목사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한국 교회 풍경
한국 개신교는 19세기 말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를 통해 전래되었다. 루터교와 성공회가 주류인 유럽의 개신교 지형과 달리 한국에서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성결교가 주류가 되었고, 이 구성이 한국 교회의 예복 문화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일부는 설교가운 전통을 유지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그 가운이 의미하는 바는 종종 모호했다. “왜 가운을 입습니까?”라고 물으면, “격식 있어 보여서” 또는 “원래 그렇게 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교가운이 ‘사제복의 거부’이자 ‘교사직의 선언’이라는 원래의 신학적 의미는 상당 부분 증발해버렸다.
오순절 계통과 독립교회들은 처음부터 양복 차림을 택했고, 이것이 한국 대형교회의 지배적 이미지가 되었다. 양복 차림의 목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단에 서는 장면은 한국 개신교의 대표 이미지다. 여기에도 신학이 있다. 다만 그것이 의식적으로 선택된 신학이라기보다 “미국 교회가 그렇게 하니까” 또는 “가운 입는 건 구시대적이니까”라는 아릿한 감각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다.
가장 곤란한 경우는 아무런 역사적 인식 없이 예복을 택하거나 거부하는 상황이다. 가운을 입는 것에도 역사와 신학이 있고, 양복을 입는 것에도 역사와 신학이 있으며, 캐주얼을 택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역사와 그 정신을 모른 채 “간지” 혹은 “편의” 혹은 “관행”으로만 선택하는 순간 옷은 신학을 말하기를 멈추고 그저 의상이 된다.
옷이 말하는 것
정리해보자. 목사의 옷에는 적어도 세 가지 신학적 입장이 겹쳐 있다.
설교가운(Geneva gown)을 입는다는 것은 “나는 제사장이 아니라 말씀의 교사”라는 개혁교회의 자기 선언이다. 이 가운이 개인을 감추고 직분을 드러내도록 디자인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설교는 개인의 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전례복인 장백의(alb)나 제의(chasuble) 등을 입는다는 것은 “예배는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서 거행되는 거룩한 행위”라는 고백이다. 루터교와 성공회가 이 전통을 유지한 것은 ‘로마가톨릭의 잔재’가 아니라, 고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예배의 연속성을 몸으로 증언하는 행위다. 최근 한국의 일부 장로교회가 검은 설교가운 대신 흰색 장백의를 도입하는 흐름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설교 중심의 전통에서 전례 중심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양복이나 캐주얼을 택한다는 것은 “목사와 성도 사이에 시각적 장벽은 필요 없다”는 만인사제설의 급진적 적용이다. 다만, 이 선택이 신학적 성찰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순한 편의인지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
결국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다. 의식적 선택이냐, 무의식적 타성이냐. 예복이든 양복이든 청바지든,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을 담고 있다면 의미가 있고, 그저 ‘분위기’나 ‘트렌드’에 따른 것이라면 비어 있다. 루터가 말한 비본질적 사안(adiaphora)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래도 좋다”가 아니라, “구원과 무관하기에 자유롭게, 그러나 이웃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신중하게”였다.
당신의 교회 목사는 무엇을 입고 있는가? 그리고 그 옷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최주훈목사 글
Background of the Clergy Robe
This article explores the historical and theological background of pastoral attire and argues that what a pastor wears is not merely a matter of fashion, but a visible declaration of how a church understands the role of the pastor.
1. The Birth of the Black Geneva Gown
The story begins during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1521, Andreas Karlstadt conducted Communion without traditional priestly vestments, rejecting what he saw as remnants of Roman Catholic priesthood. Martin Luther responded strongly, arguing that vestments were adiaphora—non-essential matters unrelated to salvation. They could be worn or not worn, but neither choice should be imposed as law.
John Calvin and other Reformers took a different approach. They replaced ornate priestly vestments with the black academic gown worn by university professors. This “Geneva gown” symbolized that pastors were not sacrificial priests but teachers of God’s Word. Ironically, what began as a rejection of ceremonial vestments eventually became a new form of clerical attire representing pastoral authority.
2. Lutheran and Reformed Differences
Lutheran churches generally retained traditional liturgical vestments such as the alb and chasuble, emphasizing continuity with historic Christian worship. In Germany, political efforts to unify Lutheran and Reformed churches forced some Lutheran pastors to adopt the Geneva gown, which caused theological resistance. For Lutherans, even though vestments were non-essential, government coercion violated Christian freedom.
3. The Rise of the Suit
In the 20th century, American evangelical and Pentecostal movements rejected clerical robes altogether. Pastors began wearing business suits—or even casual clothing—to emphasize equality between clergy and laity, grounded in the doctrine of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However, the author notes that this doctrine does not abolish pastoral office; it affirms that all believers share in priestly identity, not that ordained ministry disappears.
4. The Clergy Shirt (Clerical Collar)
Contrary to common assumptions, the clerical collar did not originate in Roman Catholicism but in 19th-century Scottish Presbyterianism. It was later adopted by various Protestant traditions and eventually by Roman Catholics in the 20th century.
In Korea, however, the historical order was reversed in public perception. Since Catholicism arrived earlier, many assume the collar is exclusively Catholic. This misunderstanding even led to a controversy in 2000 when a Korean Protestant organization attempted to register clergy attire as a patented design—an effort later overturned due to lack of originality.
5. The Korean Context
Korean Protestantism, shaped largely by American Presbyterian and Methodist missions, adopted a mixture of traditions. Some churches retained the Geneva gown; others embraced suits or casual attire. Often, however, these choices were made without deep historical or theological reflection.
The author argues that attire carries theological meaning:
Geneva gown: emphasizes the pastor as teacher of the Word.
Liturgical vestments (alb, chasuble): emphasize continuity with historic Christian worship.
Suit or casual attire: emphasizes equality and accessibility.
The key issue is not which style is correct, but whether the choice is intentional and theologically informed rather than based on trend, aesthetics, or convenience.
Conclusion
Pastoral clothing is an adiaphoron—a non-essential matter for salvation—but precisely because it is non-essential, it should be chosen freely and thoughtfully, for the building up of the church.
The final question posed is: What is your pastor wearing—and what does that choice say about your church’s theolog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