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장교 한 사람이 복무 중에 아들과 함께 잠시 영내를 벗어 나서 산책을 하던 중 부대에서 급한 일로 호출이 왔다. 그래서 7살 난 아들에게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부대에 들어가서 일을 처리했다. 정신없이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던 중 그는 아들을 다리에 세워 놓고 기다리게 한 일이 생각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잘못되었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할까?’, ‘아이는 과연 그곳에 아직 있을까?’ 여러 복잡한 생각과 함께 한걸음에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약속 장소에 아들이 서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쁜지 달려가서 아이를 꼭 껴안고 물었다. “아침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7시간 동안이나?”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아빠가 다시 온다고 했잖아!” 아이는 그곳에서 7시간 동안 기다리며 그곳을 떠날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온다는 아빠 말을 단순히 믿고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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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잠잠히는 동요하지 않는 침묵을 가리킵니다.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묵하는 이 침묵을 어느 주석가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왕의 침묵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예언자의 침묵이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침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소망했던 것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하실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를 잠잠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잠잠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헌신과 기대에 응답하시는지 잠잠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여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문제를 보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볼수록 하나님으로부터 그 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실 때마다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망, 회복할 소망, 다시 살아날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문제를 회복시켜 주실뿐 아니라 그 문제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고 더 영원한 소망도 주십니다. 우리의 세상의 소망이 끊어졌을 때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도 주시고 우리의 헛된 소망이 끊어졌을 때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도 주십니다.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s)라고 합니다. 호모는 인간이요, 에스페란스는 희망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절망은 죽음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산 자의 특징은 희망을 갖고, 약진하고, 도약하는 것이고 죽은 자의 특징은 절망하는 데 있습니다. 그 사회에 얼마나 활기가 있는가 없는가를 측정하려면 구성원의 마음속에 미래에 소망이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소망이 없는 늙은이들이 절망의 바이러스를 젊은이들에게 자꾸 퍼뜨릴 때 그 사회는 활력을 잃고 맙니다.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은 가슴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편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