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연주한 밤.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가 어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날이 저물 무렵, 하룻밤을 묵을 곳을 찾기 위해 작은 도시에 들어섰다.
거리 곳곳에는 그날 저녁 열릴 피아노 연주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포스터에는 ‘세계적인 음악가 리스트의 제자 아무개’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리스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이름의 제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한 채 호텔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는데,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 작은 마을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프란츠 리스트가 와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열리는 음악회에다, 전설적인 음악가까지 왔다는 말에 사람들은 몇 시간 전부터 연주회장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날 밤 연주회의 주인공, 젊은 여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녀는 리스트의 제자는커녕, 리스트를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다.
포스터에 그의 이름을 올린 것이 얼마나 큰 무례가 될지, 그리고 리스트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불쾌해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졌다.
고민 끝에 그녀는 리스트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오늘 밤 이 마을에서 연주회를 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왔나요?”
그녀는 숨을 고르고, 그동안 꾹 눌러두었던 사정을 털어놓았다.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 연주회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
그리고 무명의 연주자가 연주회를 열어서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만 큰 거짓을 저질렀다는 고백이었다.
말끝에는 간절한 용서가 매달려 있었다.
리스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방 안은 고요해졌고, 그 침묵은 꾸짖음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를 따라오시오.”
그는 호텔의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리고 오늘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쳐보라고 했다.
그녀는 손이 떨렸지만, 마음을 다해 건반을 눌렀다.
연주가 끝나자 리스트는 몇 군데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고, 음 하나하나를 다시 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당신은 분명 나의 제자요.
그러니 오늘 밤의 연주회는 리스트의 제자가 여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오.”
그 말은 책망이 아니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격려였다.
그날 밤 연주회장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리스트는 맨 앞자리에 앉아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의 박수는 음악을 향한 찬사이자, 한 사람의 삶을 향한 응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빌린 잘못을 꾸짖는 대신, 제자로 인정함으로써 한 젊은 음악가에게 희망을 건넸다.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은 화려하고 격정적이지만, 그날 밤 그가 연주한 것은 음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남의 잘못을 덮어주고, 다시 설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서곡이 아닐까.
우리는 타인의 잘못이나 나와 다른 의견과 행동을 마주했을 때,
비난부터 할 것인가, 아니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볼 것인가.
오늘 하루, 누군가가 힘든 과정을 견뎌온 삶에 박수 한 번 건넬 수 있다면,
그 또한 우리가 연주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음악일 것이다.
– 옮긴 글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