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옵사리온’의 감사(요6:1-15
한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물었습니다.“사람이 늙으면 왜 구부러지는 것입니까?” 스승이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사람은 태어날 때 두 자루를 목에 걸고 태어난단다. 하나는 앞 가슴에 다른 하나는 뒷 등에 달려 있지. 등에 달린 자루에는 감사와 기쁨, 믿음 소망 사랑을 담아야하고 가슴에 달린 자루에는 불평과 원망과 짜증 미움 시기와 질투 교만과 욕심을 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일 평생 앞 가슴에 달린 자루만 채워서 그런 그라네.”
최근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생존에 위협을 받고 살아갑니다. 불안과 혼돈의 시대입니다. 가슴에 달린 자루에 담은 것과 같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오늘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허리를 펴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속에서 하루하루 불안과 두려움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막상 일터로 복귀해도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은퇴하신 분들도 모두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에 안심하고 보낼 수 없어 걱정입니다. 더불어 갈수록 약해져가는 기력, 연약함에 대한 근심 또한 항상 우리곁에 있습니다.
이런 불안과 근심 가운데서 어떻게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 중요한 영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들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식사 때를 넘기며 말씀에 집중했기 때문에 모두가 허기가 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이때 제자중 빌립은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느냐. 비용을 계산하자면 한 2백데나리온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 같다고 투정썩인 반문을 합니다. 현재 먹거리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어린 소년의 런치박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보리떡과 물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겨우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던 빈약하고 영양가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보리떡과 물고기로 무리를 먹이신 이 기적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기적 이야기입니다(마태 14:13-21, 15: 32-39; 마가 6: 30-44, 8:1-10, 누가 9: 10-17).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이 기적이야기를 통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작고 보잘것없는 영양가도 없는 물고기를 들고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들고 감사하신 물고기는 다른 복음서에 등장하는 물고기와 다른 것입니다. 보통 성경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익투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이 ‘익투스’라는 단어는 원래 물고기를 뜻하지만 초대교회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들의 구주이십니다”라는 뜻으로 즉 기독교인을 뜻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익투스’를 사용하지 않고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용한 물고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익투스’가 아니라 ‘옵사리온’입니다. 옵사리온은 익투스와 다른 종류의 고기입니다. 옵사리온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이 잡아서 내다 파는 고기가 아닙니다. 옵사리온은 크기가 작고 맛이 없는 고기이기 때문에 어부들은 그물에 걸려들어도 그냥 내다 버리는 고기입니다. 이렇게 작고 맛없는 고기, 어부들이 그냥 버리는 고기를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다가 소금을 치고 말려서 먹는 고기가 바로 ‘옵사리온’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들고 감사하신 그 물고기는 그야말로 초라하고 맛없고 영양가 없는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고기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주신 것,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이 무리들과 함께 나누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차마 감사드릴 수 없는 것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축사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6:11) 축사란 빌 祝과 사례할 社가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은 ‘HE GAVE THANKS TO GOD’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감사기도후 오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감사의 시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어난후 감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모자라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수군 수군 불평하는 순간,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가 고파 불평할 시점에 예수님은 감사하셨습니다. 어떤 결과에 따른 후속적감사가 아니라 선행적 감사였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조건속에서 미리 드린 선행적 감사기도가 기적을 만드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언제 감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벳세대들녁에서 오천명의 군중이 배고프고 허기진 상황가운데에서 어린소년에 의해서 드려졌던 오병이어(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시점에 미리 감사기도(축사, Thanks to God)를 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굶주린 오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설교: 장재웅목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