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과 고난의 역설 (역대하 2 Chronicles 32:1-2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로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역대하 32:1)
본문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 줍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로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역대하 32:1) 언뜻 보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걸맞지 않은 두 의미가 한 문장에담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경은 전시 상황입니다.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렴으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반절이 흥미롭습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뒤이어 나오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앗수르 왕의 침략이 있었다”입니다. 때는 히스기야 시대입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려 온 것을 보고”(역대하 32:2).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하면서 적군이 쳐들어오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입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왕위에 오르는 역대하 29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역대하 29장 1절은 그의 치세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역대하 29:1). 그리고 바로 그에 대한 평가가 이어집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역대하29:2).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던, 유다의 드물었던 왕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는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왜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사람에게 고난이 찾아오는가?” 히스기야는 악한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으로서 성전을 정화하고 제사를 회복하며 레위인과 제사장을지원하는 등 하나님께 모든 충성된 일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든 충성된 일을 마친 직후,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침공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성도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고민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이런 시련이?”라는 질문에 대해,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단순한 답이 아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히스기야의 경험은 신앙이 고난 자체를 막아주는 ‘방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고, 그 결과 끊임없는 전쟁과 패배, 수모를 겪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같은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고 하나님께로의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된신앙이 앗수르의 침공이라는 외부적 위협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이 ‘문제 없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의 반응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성숙한 신앙의 본을 보였습니다.
· 적극적인 대비와 담대함: 히스기야는 성벽을 수리하고 무기를 준비하는 등 현실적인 대처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백성에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있는 자보다 크시다“(역대하 32:7)며 담대함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신앙이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맞서는 용기의 원천임을 보여줍니다.
· 기도로 나아가는 의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라“(역대하 32:20). 그는 자신의 충성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고난을 ‘징계‘나 ‘실패의 증거‘가 아닌, ‘영적 체력을 단련하는 과정‘으로 재해석하게 합니다. 매주 예배드리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체력을 단련하는 것과같습니다. 훈련이 경기 중 부상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않지만, 부상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참예배자의 삶은 고난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왔을 때 주님을 붙잡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영적 근력과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사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를 쳐부수심으로써 압도적인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히스기야의 충성이 ‘값으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사랑과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참예배자에게 고난은 그 신앙의 진위를 시험하는 장치이자, 오히려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언합니다:
“참예배자에게도 시련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참예배자에게는 그 시련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삶의 폭풍을 피하게 해주는 낙원 항해의 배가 아니라, 어떤 폭풍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목적지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주(方舟)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이 닥칠 때 낙담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히스기야처럼 담대히 맞서고 기도로 나아며,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히스기야가 모든 충성된 일을 다한 후에 앗수르 군대를 마주했을 때처럼, 우리들도 예상치 못한 고난과 시련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성벽을 수리하는 지혜를 주시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주셨으며, 마침내 하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셨나이다. 저희들도 그 같은 믿음을 주소서.
우리의 충성된 삶이 고난을 막아내는 방패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해 나아가게 하소서.
산헤립의 군대처럼 우리를 옥죄고 있는 모든 두려움과 절망, 생각과 환경 속에서 오직 주님의 천군을 보내사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구원하여 주소서.
주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역사 속에서, 지금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이 진리를 심장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주님께서 종의 간구의 기도도 들으시고 주님의 구원 안에 굳게 세워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