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갈릴리
마28: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요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일) 곧 내가 하는 그 역사(일)가 아버지께서 나를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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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해묵은 논쟁이 있습니다. 이는 인과관계에관한 딜레마로,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논쟁이 기독교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이단시비로 까지번졌던 논쟁입니다. 우리가 먼저 믿을 때 이해가 따라오는 것이냐? 아니면이해한 후 우리가 믿게 되는 것이냐는 논쟁입니다.
이에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결론(?)을 맫습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거기서 매듭지어 지지 못하고 ‘믿음과 행함’의 문제로 까지 발전돼 종교개혁자 루터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함을 다루고 있는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빼야한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행함은 믿음의 결과임을 간과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논쟁은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같은 논리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부활을 믿겠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부활이 없으면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에게성경을 설명해 주시자 제자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러면 과연 이 시대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될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일까?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차인표씨의 간증 영상을 보았습니다. 차인표씨도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누군가처럼 주님의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어릴 떄부터 교회를 다니고 성경공부도 하고, 성극도 4년 연속 예수님 역을 했지만, 정작 예수님은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은 갈릴리로 가서였다고 고백합니다. 아내인 신애라씨 대신 인도콜카타에 가서 봉사할 때였습니다.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고 비행기도 혼자 1등석을 타고 갔었다고 합니다.
도착 후 가난한 한 아이가 손을 내밀 때 그는 목사님께 훈련받은 대로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앵무새처럼 말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께서 오히려 그 아이를 통해 차인표 씨에게 그 말씀을 들려 주신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갈릴리’가 된 것입니다. 아름다움을믿는 사람이 꽃을 발견하듯,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웃의 형제 자매를 품을 때, 그 모습에서하나님의 형상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믿음보다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은 믿음의 결과이고 바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우리의 갈릴리’가 되기에 부활에 참여하는 ‘은혜의 도구’인 것입니다.
두 어린 딸을 잃고 심한 우울증에 무기력증까지 겹쳐 힘겨워 하던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철없는 막내아들은 아빠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계속 배를 만들어 달라고 조릅니다.
아빠는 겨우 몸을 추슬러 물에 뜨는 작은 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문득 깨닫습니다. 자기가 배를 만드는 세 시간 동안 그 지독했던 우울증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목사는 목회를 해야 하고 선교사는 복음을 전해야하고 의사는 치료를 해야 하고, 선생님은 가르쳐야 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정체성’을 잃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줍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는 결국 우리가 하는 일로 확증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자녀라면 주의 일을 할 것입니다. 그 일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작은 배 하나’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작은 배가 우리의 일(행함)이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증하는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감정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일)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가장 큰 증거는 바로 당신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어떤 섬김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볼 것인가? “갈릴리로 가라!” 이제우리가 행함으로 답을 드릴 차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작은 배’를 만들어 ‘우리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v. Ke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