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의 경전을 “성경(聖經)”이라고 부를 것인지, “성서(聖書)”라고 부를 것인지, 가끔 논란이 됩니다. 거룩할 “성(聖)” 자에 경서(經書) “경(經)” 자를 쓰면 우리의 경전을 높여 부르는 이름인 것 같고, 거룩할 “성(聖)” 자에 책 “서(書)” 자를 쓰면 그 경전을 조금은 폄(貶)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아서 굳이 성서라고 하지 말고 성경이라고 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약전서와 구약전서를 거룩한 경전이라고 하든 거룩한 책이라고 하든 그것이 그렇게 예리하게 의미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경전을 다만 중국 전통에서는 성경이라고 불러오고 있고, 일본 전통에서는 성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전통을 융합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란 말도 쓰고 성서라는 말도 쓰고, 「성경전서」라고 하여 경과 서를 절묘하게 융합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성경이든 성서이든 그것은 일반 종교의 경전을 두루 일컫는 보통명사입니다. 기독교가우리나라에서 우세한 종교가 되면서 그 용어를 기독교가 사유(私有)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성경이라고 하지 않고 성서라고 하는 것은 일본에서 불경을 성경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과 구별하려고 한 것 같다는 말을 전 일본성서협회 총무 사토 목사에게 들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불교 용어에 “성경대(聖經臺)”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불경을 놓고 읽는 독서대(讀書臺)입니다. 이제 “성경”은 “성경전서”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처음 두 자를 취한 것입니다. “성서”는, 본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만, “성경전서”의 첫 자와 마지막 자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 다가 다 경전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경이나 서에 가치판단의 구분은 없습니다. 예언서들은 으레 예언서/선지서라고 부르지 절대로 예언경/선지경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야고보서 라고 하지 로마경 고린도전후경 야고보경이라고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경전의 이름은, “성경”도 “성서”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의 고유한 이름은 “언약서/계약서”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구약”과 “신약”입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들과 공유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기독교의 경전의 성격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일면을 밝혀주기도 합니다. 계약서로서의 경전입니다. 무슨 고전으로서의 경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갑(甲)이 되고 우리가 을(乙)이 되고 중간에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증인이 되시어서 맺은 언약/계약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경전입니다. 고전적 가치나 철학적 가치로 말하자면 불경이나 유교의 경전이 성경보다 못하겠습니까? 성경이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고전이라거나 최고의 철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은 계약서이기 때문입니다.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고전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의 요청과 우리의 마땅한 응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계약서로 읽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 종교가 소원성취를 우선적으로 발생한 것인데 반하여 기독교는 “내 뜻 이루어 주십시오”의 종교가 아니라 “당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는 종교입니다. 신약과 구약이 합쳐 있는 성경전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요청이 들어 있는 계약서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갈림이 이 계약을 지키느냐 어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고, 너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