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남왕국 시대에 히스기야라는 선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왕에게는 므낫세라는 악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선한왕 히스기야와 악한 아들 므낫세왕이 폭정을 하고 있는 동안 유대 민족은 심각한 도덕적, 종교적인 부패속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소위 종교적 혼합주의(Syncretism)가 성행했던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막 섞어 놓아 진리가 비진리인 듯 부정의가 정의인 듯 우상숭배로 인해 어둠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안에는 태양신의 숭배가 성행했는가 하면 바알과 아세라 숭배, 강신술등 우상숭배가 나라 안팍에 기승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BC 641년에 므낫세가 죽고 난후 그의 아들인 아몬이 22세에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버지의 그 죄악된 행동을 그대로 수용하고 따랐기에 나라는 더 혼란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왕하21:20)
그는 2년 후인 BC. 639년에 암살 당함으로써 그의 생애의 비극적인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8살난 어린 아들이었던 요시아왕이 그의 뒤를 잇게 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31년동안 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힐기야를 통하여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새롭게 합니다.(왕하 23:2-3)
그리고 충직한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모든 우상들을 불태우고 종교개혁을 착수합니다. 마음과 성품,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율법을 준행하고 사사시대부터 잃어버렸던 유월절 절기를 회복시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운동은 히스기야의 아들이었던 므낫세의 악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로 인해 이미 때가 늦은 후였습니다.(왕하 23:26)
BC 626년 요시야의 통치하에 스바냐라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스바냐 선지자는 예레미야와 함께 유대와 예루살렘에 앞으로 내려질 심판을 예언하는 심판의 선지자로 등장합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원래 히스기야의 증손으로 궁중의 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안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기가 죽어 있었고 사회의 도덕과 종교마저 잃어버리고 배가 표류하듯이 혼란과 무질서가 지배하던 가운데 스바냐 선지지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유대와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이웃민족들마저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 사람들들에게 파멸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스바냐 1-2장에서 그 시대의 백성들에게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더욱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나라도 어지러운데다 사람들은 죄악에 빠져있고 하나님은 그들의 안중에 없고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멀지 않았다고 하니 저마다 깊은 절망과 비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다시 스바냐를 부르시고 그 백성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어둠속에서도 밝아오는 새벽을 기다리며 희망의 밝은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남은 자들, 아직도 믿음의 정절과 대의를 지키며 삶의 절망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앞에서 신실하게 서 있던 자들, 이 남은자들에게 허락하신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기가 죽은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의미가 Salvation이라는 의미보다도 우리가 삶의 위기와 절망속에 있을 때 우리를 구출해지고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셔서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기가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는구원을 베푸실 전능한 하나님이시라” 그렇기에 기죽지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우리는 결코 위축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스바냐 선지자는 오늘 절망속에 하루 하루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그는 지금 현재 이 시간에도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십니다. 여러분을 바라보실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울러 오늘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때에 너희로 천하만민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지금 망해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다시 모을 것이다.이 땅에서 너희들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을 칭찬과 명성,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불행이라는 터널을 지날 때 터널 끝에 비추이는 빛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울 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을 수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버림 받았다고 생각될 때 혼자가 아니며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희망은 현실의 모든 슬픔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남아공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 딸이 아이를 낳아 아버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딸의 요청에 만델라는 아이의 이름을 ‘Hope’ 곧, 희망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를 떠난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그가 석방되던 날 전 세계 매스컴에 비춰진 만델라의 모습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참 자유자의 표정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권을 이어 받은 만델라 대통령은 한맺힌 사람의 모습이 아닌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람으로 또한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만델라에게서 희망이 떠난 적이 한번도없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속에 있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속에 있습니다. 세상끝날까지 고아와 과부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겠다던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붙들고 나간다면 우리 삶과 교회공동체는 분명코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마지막 불꽃을 부둥켜 안고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과 축복의 말씀을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셔서 얼마남지 않은 올해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삶의 영역에서 승리하시길 소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