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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 Pastor Column

종교개혁 507주년에 부쳐: 루터의 개혁 이후와 그 영향

금년 10월 31일은 개신교의 원줄기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독일 북부 비텐베르그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7주년이 되는 해이다. 왜 매해 루터의 종교개혁일을 기억하며 지키느냐?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길을 잃으면 과거 역사에서 길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당시 독일과 전 세계에 미친 루터의 영향은 지대했다. 루터의 가장 큰 업적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고 성직자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과 헬라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 결과 대중들이 자유롭게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터가 헬라성경을 독일어로 직접 번역한 신약성경은 1522년 9월에 출판되었다. 이것이 9월에 나왔기 때문에 9월 성경(September Testament, 1522)이라고 불리운다. 구약성경까지 완역해 신구약성경 합본으로 처음 출판된 것은 1534년이다. 루터는 154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동료들과 함께 11번이나 성경의 개정을 거듭했고 마지막 개정판은 그가 죽은 후에 발간되었다.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루터가 있다고 독일 사람들을 자랑스러워한다. 목숨을 건 성경번역과 함께 루터의 설교는 회중에게 전해지고 그의 전례는 노래로 불렸으며 그의 요리문답은 가정에서 읽히고 가르쳐졌다. 결국 그가 성경을 번역하면서 사용한 독일어는 현대 독일어의 표준이 되어 독일어를 통일하는 데에 공헌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그가 성경번역시 사용한 독일어로 오늘날 독일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을 넘어 다른 나라들에서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영향을 미쳤고 개신교 신조와 신앙고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에서는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통해 성경번역, 공공기도서는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요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 찬송가는 아이작 와츠(Isasc Watts)을 통해 진행되었다. 1536년 처음 출판후 20년동안 8번의 개정판이 나온 기독교 강요의 최종본은 1559년 처음엔 라틴어로 쓰여졌다가 후에 칼빈이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루터가 성경번역을 통한 종교개혁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라 한다면 그보다 25년후인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개신교 신학을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한 종교개혁 시대가 낳은 최고의 걸작품인 기독교강요를 완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 북부 비텐베르그를 시작으로 스위스에서는 쮜리히시를 중심으로 쯔빙글리가, 제네바시를 중심으로 칼빈이, 칼빈의 영향을 받은 스코틀랜드는 존낙스가,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웨슬리는 당시 엄격한 관례인 설교는 주일날 영국교회당안에서만 해야된다는 전통을 깨고 길거리와 광촌등에서 설교를 한 18세기 영국판 사도바울이었다. 당시 피폐한 삶을 살아가던 노동자들에게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엘리트 영국국교회 목사가 야외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실로 감동적이었다. 교단이 강단을 허락해주지 않을 때 웨슬리는 좌절하지 않고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The world is my parish)”라고 외치면서 야외집회로 방향을 돌렸던 것이었다. 훗날 학자들은 웨슬리의 담장과 울타리를 넘어선 감리교 부흥운동이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나 러시아와 같은 유혈혁명을 겪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웨슬리는 1771년 프랜시스 애즈베리(France Asbury, 1745-1816)라는 평신도 설교자를 신대륙 미국으로 파송하게 된다. 애즈베리는 그의 동료들이 인구가 밀집된 안정된 마을의 목회를 선호할 때 그는 웨슬리와 같이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가야 한다는 결심속에서 죽기전까지 말을 타고 30만 마일 이상을 여행하였다고 한다.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 여파는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미국에 들어오게 되고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루터 당시 자주나온 경구는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Vita Clerici est evangeliuum laice)이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만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이다. 기독교의 쇠퇴라는 엄중한 현실속에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아울러 종교개혁가들의 경구들이 주는 의미는 지나온 교회사가운데의 과거의 한 역사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지금 수행해야 할 현재적인 과제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글: 장재웅목사,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http://dc.koreatimes.com/article/20241023/153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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