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이너샤'(inertia)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관성’에 해당된다. 팽이나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으려는 힘이 바로 관성이다. 당연히 교회 조직에서도 이너샤가 존재한다. 우리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개혁하는 교회”를 표어로 내걸고 생활 습관에서부터 교회 조직까지 변화를 주어보자고 외쳤다. 매 수요일밤에는 마태복음을 주제로 개혁에 관한 말씀도 나누고, 구역에서도 공부했다. 그럼에도 연말에 와서 결산해 보니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변화가 없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존 코터(John p. Kotter)교수가 지적한 말이 딱 맞다. “수많은 조직들이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생존하기 위해, 발전을 위해 근본적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대다수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기대 수준 이하의 성과를 낼뿐이다”
모든 인간에게 안정감의 욕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상점을 찾지 않고 예전에 다니던 가게를 그래도 간다. 집을 팔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학교에 불만이 있어도 학부를 졸업하고 신대원, 석사, 박사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검증되었고, 익숙하며, 그래도 믿을만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임목회자가 부임해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거나 주장하면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방회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합석한 후배 목사, 그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 담임목사였다. 선배랍시고 조언을 했다. “목사님, 아마 성도들이나 장로들이 허니문 기간, 즉 2-3년은 요구하지 않을거요.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 봇물 터지듯 요구사항이 많을텐데, 처음부터 다 들어주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합니다” 그가 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벌써부터 요구사항이 많은데요!” 부임 후 몇 달되지도 않았는데 잔소리하고, 불평하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교회 조직에서 이너샤, 관성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거 지향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때 그렇다. 현재 교회의 리더들은 지난 날 나름대로 교회에 충성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은 지금까지 성공의 자리에 올려준 방식을 버리고 성공할지 모르는 새로운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 대단한 모험으로 여긴다. 변화의 필요는 인정하지만 실제로 따라가기 쉽지 않은 것이다.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 과거 경험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려면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작은 교회를 목회한 경험자들이 흔히 큰 교회에 부임할 때 그런 마음을 갖기 쉽다. 해보지 않은 일에 앞장 서고 새로운 대안들을 조합하거나 만들어 낸다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익숙함을 좋아하고 불편함을 거절하는 성향이 있다. 새로운 방법을 들었고 시행하고 싶어도 그것이 ‘내 것’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의 불편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교회에서 예배의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시행하지만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곧장 접어 버린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외쳐도 여론을 이끄는 몇 사람이 반대하면 중단해 버린다. “아 좋네요. 이거 흥미 있습니다. 우리 해봅시다!”라고 찬성하는 사람보다 “어려워요. 우리에게 맞지 않아요”라고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은 변하는데 우리만 예전 일을 고집할 수 없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다”(사 43:19). 하나님은 늘 새 일을 행하신다. 우리는 따를 뿐이다.(최종인목사, 본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