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18)
3월 5일(화)
사 43:1-21
중증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시절 남편을 여의시고 홀어머니로 어렵게 아들을 키워야만 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게되는 사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의족으로 걸어야 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일으켜 주지 않았습니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라며 모질게 그 자리를 떠난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운동회 날 아들은 학교 가기를 꺼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빨리 일어나 운동회에 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모진 분이셨습니다. 아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운동회에 가라는 엄마가 미웠습니다. 그에게 걸림돌은 산 동네 비탈진 골목길 계단이었습니다.
일반인도 오르내리기 어려운 경사 길을 매일 지나다녀야 했습니다. 특히 눈 오는 날은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눈이 쓸려 있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눈을 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분이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습니다. 눈이 오는 어느 날, 병원에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달려간 아들은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병원 앞에서 눈을 쓸고 있었습니다.
짜증 난 목소리로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아들이 말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못 알아보고 대답합니다.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학교 가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그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 “혼자 일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고 했던 말이 번뜩 떠오르면서 왜 그러셨는지 알게됩니다
또 “운동회라 창피해서 학교에 못 간다고? 그럼 평생 숨어 살아!”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됩니다. 모질게 숨겨왔던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는 눈을 쓸며 계속 혼자 말을 합니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열심히 눈을 쓸고 있는 어머니를 보던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겉옷을 벗어서 어머니를 덮어드리고 안아드립니다. 어머니의 모진 사랑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머니의 모든 행위가 이해되지 않고 미움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으니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질게 보이기만 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모진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넘어지게 하는 사람’, ‘빼앗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야비한 우리들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입니다.
얄팍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져주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두 이름을 동시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시는 하나님이 부르신 우리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을 듣지 않고 허물이 많아도, 다시 위로하시고 마침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을 때, 말씀합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것이 ‘하나님의 자존심’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존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에, 우리가 처한 어떤 어려움에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지금 마치 바벨론에 끌려온 포로의 삶과 같습니까? 하루 하루가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통해 찬송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 약속인 것입니다.
오 주여
모질게 보여 알지 못하던 그 큰 사랑
주님의 사랑을 이제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 ‘모진 사랑’에 통곡하게 하소서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사순절의 간절한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