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하는 교회의 전도파워 by 그렉 로리
☞소수의 훌륭한 그리스도인 – 어떻게 열두 사람이 세상의 이목을 끌었는가?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들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가지 행동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첫째, 성령을 따라 행한다.
너무나 자주 프로그램이나 설문조사, 오락성 등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의 능력이야말로 이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실제적인 수단이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인 체험이 아니다. 성령충만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행한다.
우리 자신의 우선순위가 아닌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염두해 두어라.
*(하나님)은 우리의 일시적인 계획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에 더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인 의식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시적인 행복이나 안락보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강점보다 사람들의 약점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더 관심이 있다.
셋째,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행한다.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들이 소유한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우리는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거꾸로 된 것같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본질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의 뒤집기 전술은 다음과 같다.
1)빼앗는 자에게 주어라. 2)핍박하는 자를 사랑하라.
3)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4)자신을 낮추라.
5)생명을 내려 놓으라.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
–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뒤집기 계획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에 주요 도구로 오류투성이인 인간들을 택하셨다. 이것을 우리는 『대위임령』, 또는 지상명령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전도자나 선교자에 국한되지 않고 온 교회를 향해서 명령 된 것이다. 하나님은 99마리를 나두고 1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처럼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귀중히 여기신다. 우리도 그러한 심정으로 전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교회는 『대 위임』을 『대 양보』로 반응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전도하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장 큰 이유는 관심부족이다. 이것은 고난의 원인이 되는 일이다. 여기에 기꺼이 능욕받는 것을 합당한자로 여기며 기뻐하는 것이 세상을 뒤집는 자들의 태도이다.(행5:40-42) 그는 미루지 않는다.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실제의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을 뒤집는 그리스도인들은 원칙을 따라 살면서 마치 비행기가 항상 추락할 수 있는 것처럼 깨어서 행동한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그런즉.....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6-8)”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어디서 어떻게 어떤 위대한 영혼을 깨울지 모르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일을 우리 없이도 이루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부족한 우리에게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신다. 마태복음 28장의 『위임』은 ‘맡기다’, ‘권위를 부여하다’, ‘힘을 실어주다’의 의미를 가진다. 권위자가 보낸 사람은 동일한 권위를 갖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당신은 예수님을 아십니까?
– 전도의 실제 원칙들
진정한 복음 메세지는 본래 대결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저한다. 어색해 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말하는 자나 듣는자 모두가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복음전도자는 대개 가장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새신자가 새신자를 전도한다)
우리는 부족하지 않다. 복음은 단순하고 진실하다. 우리는 사시나무처럼 떠는 가운데서도 세상을 흔들 수 있다. 어떨때는 이사람에게는 복음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욕구가 있다.
1)사람들은 영적으로 공허하다.2)사람들은 고독하다.
3)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4)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
☞빌립전도원칙(행8장)
구체적인 예로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빌립 전도 원칙>을 살펴보자.
1.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
하나님은 빌립을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셨다.
2.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라.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서 성공하였다.
그러나 광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였다.
3.재치를 가지고 접근하라.
빌립은 내시에게 다가가서 대화하기를 청한다.
재치는 적절한 것을 적절한 시점에 말하는 직관적인 지식이다.
효과적인 전도자는 항상 익숙한 용어로 핵심 개념들을 설명한다.
4.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라.
먼저 관계를 맺으라. 복음의 메세지를 누군가에게 들려 주고자 한다면 우리는 잠시 동안 그 사람의 입장에 기꺼이 서려는 자세가 있어야한다
5.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라.
이것은 강력하고 중요한 도구이다. 성경은 그들이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사용하라. 알라. 배우라. 그리고 암송하라.
6.당신의 이야기를 해주라.
이것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듣고 있다고 느끼지 않게 하면서 복음을 전해주는 훌륭한 방법이다. 훌륭한 간증은 우리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서 과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나님이 당신의 삶속에서 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포기한 일들에 촛점을 맞추라
7.반응을 요구하라.
반응은 두가지다. ‘Yes’와 ‘No’이다. 하지만 묵사발 당하더라도 요구.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 관찰자는 많다. 비판자들도 많다. 불평하고 주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일꾼은 부족하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이 길로 걸어라
☞ 세상을 뒤집는 제자도의 의미
하나님은 하나님의 세상 뒤집기 계획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하나님을 따르는 수만의 군사보다 철저히 헌신된 소수의 인원을 가지고 일하시기를 더 좋아하신다. 기드온의 용사들이 그랬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그러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이들은 예수님의 팬이었고, 열심히 따라 다녔으며, 말씀 듣기에 열중했고, 예수님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 예수님은 이 흠모하는 대중을 향해서, 그리고 언젠가 예수님을 따르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매우 어려운 말씀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눅14:25-35절 말씀이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과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세상을 뒤집는 사랑
– 세상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만일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를 세상에 들어내기 원한다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사랑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방법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원칙들은 세상을 뒤집는 우리의 가장 큰 전도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살아있는 편지이다. 하나님이 쓰셨고, 사람들이 읽는다. 사람들은 당신의 사랑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원할 것이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적극적이고, 개입하고, 일하고, 움직인다.
고전13장은 이러한 사랑에 대한 훌륭한 출발점이다. 거기에 ‘사랑’아리는 단어를 빼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라. 참으로 어색하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여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대입해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여기서 사랑은 인내이다. 인내는 일에 대한 인내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인내이다. 그 다음은 온유이다. 이것은 쓸모 있고, 잘 섬기며, 친절하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호의이다. 사랑은 활동적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사랑이 아닌것 시기심, 자랑, 무례히 행하는 것, 성내지 않는 것, 또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또 사랑은 포기하기를 거부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은 성령의 열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이다.
교회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변인들이다.
행2장에 묘사된 초대 교회의 사랑과 일치가 우리의 모범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세상에는 관대하지만 교회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랑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움과 분열이 생긴다.
교회 안에서부터 화평하라. 조화를 일구고, 차별을 없애라.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교회를 들여다보고 감동해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세상을 뒤집는 교회는 사랑하는 일에 헌신되어 있어야 한다. 달콤한 감정주의, 신기루 같은 사랑이 아니라 협동적 노력과 공동의 목적에 기초한 사랑이다. 우리의 주장이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똑똑, 누가 기도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뒤집는 기도의 능력(행12장)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원칙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에 대해서 보여주신다.
♥행12장에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사건이 나온다.
그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교회가 선택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었다. 미련하게 보여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 보이지 않지만 가장 공격적인 행동, 이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다. 모든 문이 닫혀 있는듯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의 문이 있다. 이것은 비밀병기이자 우리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감옥을 풀려 난 베드로가 사도들이 모인 곳에 왔는데도 아무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들이 기도해 놓고서는 믿지 않으려 하다니! 여기에 영적 핵심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시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다만 순종하는 가운데 기도할 뿐이다. 믿어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기도는 전적으로 영적인 행동이다.
기도는 세상을 뒤집는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