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신약성서 사본이란 무엇인가?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우리가 읽는 성경 본문이 사실은 원래의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부류의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아. 그래요?” 라고 한 마디 말하고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 본문이 원문인지, 아니면 변개된 본문인지, 그런 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도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성서의 본문이 원문이든 아니든 이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설마 그럴 리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들은 마태복음 5장 17-18절의 말씀을 근거로 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율법”은성서를 가리키며,1)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라는 말은 성서의 완전함, 즉 성서의 본문은 결코조금도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성서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필자가직접 대답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성서가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 전승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면, 굳이 따로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누구든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얻게 되리라기대합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런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말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반응합니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성서의 원본, 즉 성서 기자가 최초로 썼던 그 “자필원고”가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원본”을 베낀 것, 아니 그 베낀것을 베끼고 또 베끼고, 그것을 다시 베낀 사본만이 그나마 매우 오래 된 것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알고 있기 때문에, 성서의 “원문”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말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수많은 신약성서 사본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다른 것과 똑같지 않으니 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올해 이 지면에 6회에 걸쳐 신약성서 사본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꼭지 제목을 “쉽게풀어 쓴 신약성서 사본 이야기”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신약성서 사본학2) 이라든지 신약성서 본문비평3)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독자들과 함께 신약성서 사본 여행을 떠나볼까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어 신약성서 사본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 호부터는 이문의 발생 원인과 인쇄본의 역사를 소개하고, 뒤이어 “파피루스 사본”,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등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고, 곁들여 사본의 발견 및 취득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소개할까 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연구하고 공부할 때, 주로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번 연재를 통해서제가 의도하는 바는, 내용이 아닌 “외장”에도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에서 잠시 눈을 떼어서 “하드웨어”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입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겠지만, 컴퓨터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면,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 없이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경우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드웨어를 잘 아는 컴퓨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간단한 고장인 경우에는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을 조금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서를 연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고, 우리의 믿음이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는다면, 성서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강한 도전을 받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성서 자체에 대한 지식, 그러니까 성서가 어떻게 쓰였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전승되었고, 오늘날 성서의 본문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고, 우리말로 번역된 성서는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올바른 성서관을 갖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서에 대한 무지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이블 코드』나『다 빈치 코드』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아도,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신앙을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6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이러한 필자의 의도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성서연구를 하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먼저 본문을 읽고, 그 본문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더 나아가 그 본문의 의미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혹자는 이 과정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몸으로 읽는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본문이 어떻게 우리에게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후 50년 이후에 쓰인 신약성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2,000년 후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는지에 주목해볼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번역된 우리말 성서를 매우 싼 값에 사서 쉽게 읽고 있지만, 초대교회의 교인들의 상황은 우리와는 확연히 달랐을 것입니다. 인쇄기술이 없었을 테니 손으로 베껴서 성서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렇게 만든 책은 워낙 비쌌을 테니, 기독교인이라고 하여도 일반인들은 성서를 쉽게 접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성서를 어떻게 만들어냈고, 또 성서를 어떻게 구입하여 읽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성서의전승 역사, 즉 오늘날 우리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본”에 대한 설명도 없이, “사본”이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사본 이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앞으로 계속 나오게 될 것입니다. 벌써 “이문”(異文)이라든지, “파피루스”라든지, “본문비평” 등의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주제를 다루게될 때, 관련된 용어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꼭지 제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이 “쉽게 풀어 쓴 신약성서 사본 이야기”인데, “쉽게 풀어 쓴”이라는 말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고, 학문적인 논의는 되도록 피하겠다는 필자의 의도를 반영합니다. “사본”(寫本)이라는 것은 손으로 베껴 쓴 책이나 문서를 뜻합니다. “붓 필”자를 넣어서 “필(筆)사본”이라고 하기도 하며, 또는 손으로 베꼈다는 의미로 “손 수”자를 붙여 “수(手)사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사본이란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만든 책이나 문서를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13세기 전반부에 금속활자가 발명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이보다 200년 이상 늦은 15세기 중반에이르러서야 인쇄술이 발명되었습니다. 15세기 중엽, 정확한 연도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대략1450년경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대략 1397-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인쇄술을 발명한 다음, 그가 처음으로 찍어 낸 책은 바로 성서였습니다.(그림 1)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 성경이었던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금속활자로 찍어 낸 것이지요. 표제지나 출판년도에 관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출판연도를 알 수는 없습니다.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다고 해서 『구텐베르크성서』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매 쪽이 42행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42행성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성서의 발행으로 사본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쇄본의 시대가 열린것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15세기 중엽 인쇄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모든 성서는 손으로 베껴서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베낀 성서를 우리는 성서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목 가운데 “신약성서 사본”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신약성서 내용을 담고 있는 사본이겠지요. 지금은 이것을 우리가 성서 사본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을 만들고 사용하던 당시에는 사본이 아니라 성서라는 말이 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서 사본이 오늘날 대략 몇 개나 남아 있을까요? 여러분도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대다수의 사본들은 소실되었습니다. 예전에 사용되던 그 많은 수의 신약성서 사본들 가운데 극히 적은 수만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은 책과 문서들이있었겠습니까? 물론 삼국시대에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런 문서들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것을 보면, 대다수의 성서사본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사라졌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낡아 헤어져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주후 300년 이전에 사용되던 고대 사본들이 지금까지 남아있기는 힘들겠지요. 고대의 또 다른 많은 사본들은 기독교 박해과정에서 불타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이 훼손되고 소실되었지만, 그가운데서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사본들이 몇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신약성서 사본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하려면, 먼저 고대의 다른 작품들의 사본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등과 같은 고대의 역사책이라든지 호머의 작품들의 경우에도 많아야 열개 남짓 되는 사본이 남아있으며, 웬만한 고대의 작품들은 한두 개의 사본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4)
반면에 신약성서의 경우,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략 2만 5천 개의 사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고대 번역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성서가 이미 2세기부터 시리아어와 라틴어와 콥트어와 에티오피아어와 아르메니아어와 그루지야어 등 많은언어로 번역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 사본만 해도 대략 5천 5백여 개입니다. 2006년 1월 4일 현재 5746개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사본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5) 물론 이 숫자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새로운 사본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숫자는수시로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속 사본이 새로 발견되고 있고, 이미 오래 전에 발견되어 창고에 쌓여있던 어떤 조각 사본이 신약성서 사본으로 정체가 규명됨에 따라 전체적인 신약성서 사본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6) 사본들이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언급하기 전에, 신약성서 사본들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신약성서 사본의 수가 많지 않았을 때에는 사본들을 굳이 몇 그룹으로 구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본들이 계속 발견되고, 그 수가 점진적으로 늘어나자, 사본들을 분류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이러한 실질적인 필요에 따라 사본이 분류되었습니다. 신약성서 사본은 크게 파피루스 사본,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성구집, 이렇게 네 그룹으로 나눕니다. 파피루스 사본이란, 파피루스라고 하는 식물로 만든 용지를 사용한 사본입니다. 대문자 사본은 그리스어 대문자로 쓰인 사본이고, 소문자 사본은 그리스어 소문자로 쓰인 사본을 가리킵니다. 위의 세 부류, 즉 파피루스 사본,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은 구성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성서와 비슷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 부류의 사본은 신약성서의 본문을 이어서 기록한 “연속본문”이 적혀있는 사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구집은 이와는 다른 특징을 나타냅니다. 그날그날 읽어야 할 본문이 선택적으로 실려 있는 것이 성구집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구집은 마치 오늘날의 성구 묵상집과 같은 것인데, 요일마다 또는 주말마다 읽어야 할 성서 본문이 적혀 있는 사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다 대문자 사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대문자로 기록되었는데 대문자 사본이 아니라니요? 물론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다 소문자 사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성구집의 경우, 대다수의 성구집이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약 20% 미만이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소문자는 어느 한 순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입니다. 초기에는 우리가 대문자라고 부르는 필체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7-8세기경에 이르러 그리스어 소문자가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9세기 이후에는 소문자가 대문자를 완전히 대신하기에 이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초기에 만들어진 성구집은 대문자로 되어있고, 9세기 이후의 것들은 소문자로 되어있습니다. 다만, 성구집을 대문자 성구집과 소문자 성구집으로 구분하지 않고, 이 둘을 합쳐 성구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을 구분하는 기준은 필체입니다. 우리는 필체를 보면, 대략 이것이 초기의 사본인지 후기의 사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으면 일반적으로 8세기 이전의 사본이고,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으면 일반적으로 9세기 이후의 사본인 셈입니다. 사진에서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후기에 만들어진 소문자 사본(그림 2)은 대문자 사본(그림 3)에 비해 훨씬 화려합니다. 중세 교회의 막강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본문을 여러 가지 색과 심지어는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복음서 앞에는 복음서 저자로 알려진 인물들의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이 교회에 집중되었던 중세시대에 화려하게 장식하기에 성서만큼 좋은 것이 또 무엇이었겠습니까!7)
또한 파피루스 사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그림 4). 파피루스라는 용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런사본들을 파피루스 사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파피루스 사본도 대문자로 쓰였습니다. 그렇지만이것들을 대문자 사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파피루스 사본과 대문자 사본을 구분하는 기준은 필체가 아니라, 사본의 재질입니다. 소문자 사본도 그렇지만, 대문자 사본은 소나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가공하여 만든 양피지에 쓰인 사본입니다. 반면에 파피루스 사본은 파피루스라는 식물(그림 5)로 만든 용지에 쓰인 사본입니다.8)
정리하여 보면, 파피루스 사본은 파피루스 용지에 “연속본문”이 대문자로 쓰인 사본입니다. 대문자 사본은 양피지에 “연속본문”이 소문자로 쓰인 사본이고, 소문자 사본은 양피지에 “연속본문”이소문자로 기록된 사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구집은 “연속본문”이 아니라 각 요일마다 읽어야 할“선택된 본문”이 대문자 또는 소문자로 실려 있는 사본입니다. 대략 4세기에 접어들면서 양피지가파피루스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많은 파피루스 사본은 4세기 이전의 것들이며, 대문자 사본들은 일반적으로 4-8세기의 것들입니다. 소문자 사본은 9세기 이후의 것들입니다. 물론 7세기의 파피루스 사본도 있고, 3세기의 대문자 사본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의파피루스 사본이 4세기경 대문자 사본으로 대체되었고, 9세기경 소문자 사본이 다시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이해하면, 전체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모든 사본들이 코덱스 형태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신약 문서들이 기록되던 시대, 또 그것들이 필사되던 초기 시대에 일반적인 책의 형태는 두루마리였습니다. 코덱스라는 책 형태를 처음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 주장을 확언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코덱스 형태의 책 형태를 널리 유포시켰다는 것입니다.9)
말하자면, 코덱스는 기독교 문화의 유산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이런 형태의 책을 널리 유포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호(3월호)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사본이 주로 어디서, 또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도대체 왜 서로 다른 본문을가진 사본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 등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민경식 l 박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B. A)와 같은 대학원(Th. M)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Dr.theol.)에서 신약성서 본문비평 및 신약성서 사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감리신학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Die fruheste Uberlieferung des Mathauserangeliums
(Berlin/New York:Walter de Gruyter, 200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