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4:5)
매년 새해의 시작은 1월 1일 신정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교회력의 시작은 대강절(Advent)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교회력으로는 신년이 되며 따라서 대강절 첫째 주일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셈입니다. ‘대강절'(Advent)이란 뜻은 “도착한다,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성탄절 이전 네 번 주일을 대강절 혹은 강림절로 지켰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Advent) 즉 내려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강림이란 마치 풋볼 경기에서 상대방 골대에 볼을 가지고 터치다운하듯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touch down 즉 성육신하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강절에는 강단상에 촛불 4개가 꽂혀 있습니다. 이 초들은 빛되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어둠속에 살고 있던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빛으로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매 주일마다 촛불이 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촛불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다시금 오실 주님을 소망중에 기다리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수많은 기다림의 시간들을 두셨을까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십칠 세에 사무엘로부터 ‘너는 이 땅의 왕이 될 것이다’하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궁에 들어갔을 때 사무엘을 통해 받은 비전과 꿈이 이뤄지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 때부터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나서 하나님의 때를 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실 때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의지할 만한 분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분명한 믿음을 갖게 하시는 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일을 맡기실 때에 감당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고자 훈련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열일곱 살에 부르심을 받아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십삼 년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의 다윗이었습니다. 먼저 골리앗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그의 인생에 닥쳐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막내였기 때문에 의존적이었을 지도 모르는 다윗은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장인 사울 왕으로부터 집요하게 추적당하며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사람은 신뢰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사랑하는 아내 미갈과의 아픈 헤어짐을 경험했습니다. 인생 중에 함께 영원히 가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사의 모든 세파를 다윗은 경험했습니다.
그는 외로움과 고독이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광야 동굴 속을 전전긍긍하며 죽음의 그림자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헤쳐 나갈 때에 문득 산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고독과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시를 알지 못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외로움이 묻어있으면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십삼 년을 지냈기에 그는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드리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 배웠던 것이 무엇일까요? 그는 목동으로서 양떼를 돌보면서 어떻게 하면 양을 보호하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양떼를 인도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과 의문을 가지고 양들을 인도해 갔습니다. 양을 풍성하게 먹였습니다. 그가 쫓겨 다니며 광야에 숨어 다닐 때에 자기를 따라다니던 가난하고 비루한 사람 400여 명을 먹이고 굶기지 아니하는 훈련을 바로 양 떼를 돌보며 받게 됩니다. 왕이 되었을 때에도 자기에게 맡겨준 백성을 굶주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Lordship), 그리고 왕으로서 그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고 지키는 직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 기간동안 훈련받았던 것입니다. 결국 십삼 년이 지난 다윗은 삼십 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요셉은 서른 살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형제에게 팔려가기도 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도 이십오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모세는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꿈을 품고 있으면서도 사십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쓰라린 맛을 보게 하면서까지 기다리게 하실까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신분을 얻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주어졌으면서도 왜 우리는 왕처럼 고고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제사장 사무엘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나머지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스스로 드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임의로 해석하여 아내 사라와 논의한 후에 사라의 몸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날, 약속의 아들이라고 믿었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인생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존재로 남게 됩니다. 이 두 아들의 분쟁이 지금까지 중동의 문제입니다.
요셉이 삼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옥에 있을 동안 요셉의 내면은 훈련되었겠지만 감옥에서 삼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애굽의 관리로 등용될 수 없는 사회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감옥에 있을 동안 하나님은 요셉의 내면세계를 변화시키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애굽의 다른 많은 관리들의 생각에 히브리 족속의 노예라는 생각 대신 자기들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훈련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위함입니다.
41년간 비행기 조종사로서 21,200시간을 무사고 비행한 후 은퇴한 신일덕 비행기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기간중 일어난 간증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1990년 11월 16일 KE 725편 기장 조종사로서 서울에서 사이판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주말이라 신혼부부 60여쌍을 비롯한 모두 165명이 탑승을 하였습니다. 승무원은 8명이었습니다. 출발할 때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습니다. 비행기가 이룩한 후 신혼부부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하였습니다. 괌과 사이판은 미국영토령이기에 하와이 관제탑으로부터 기상정보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이판 기후가 나빠 천둥이 치고 장대비가 내린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원래 아열대성 기후는 예측하기가 어려워 비가 오다가도 금방 개는 경우가 많아 착륙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도착 15분전 서서히 강하하는데 기관사가 착륙바퀴 유압이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유압이상으로 바퀴가 빠지지 않으면 수동으로 바퀴를 꺼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육시간에 여러번 해 보았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다소 불안해 하는 승무원들을 안심시켰지만 그 또한 다소 긴장이 되었습니다.
기관장이 수동장치를 열고 기체 밖으로 바퀴를 내려고 핸들을 돌리는데 안됩니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외쳤습니다. “기장님. 큰일 났습니다. 수동장치가 안 돌아갑니다.” 그는 여러 응급조치를 해보았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고 합니다. 이제 승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 ”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기체 바퀴에 이상이 생겨 동체 착륙이 불가피할 지 모릅니다. 일단 본인들의 모든 소지품을 앞의자 주머니에 넣어주시고. 고개를 좌석밑까지 최대한 자세를 낯추시길 바랍니다.” 기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신혼부부들이 여기저기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기관장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울부짖음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 승객들은 이제 막 결혼한 새로운 인생들이 아닙니까.” 땀을 비오듯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 때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n’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기관장! 한 번만 더 수동장치를 돌려주게”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외침후 수동장치를 돌리는 순간 마치 기름을 친 것처럼 바퀴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조종실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십니다 ” 그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지만 그날 이후 더욱 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순간 순간 기도에 응답하시곳 성도의 삶속에서 역사하신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삶이 힘겨워지고 시대가 어두워져도 앞이 캄캄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위기와 절망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의 손길은 계속되어집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과 의지를 내려놓고 한번도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