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에도 예배당 제단을 장식했다. 햅쌀과 잡곡, 고구마와 감자, 무와 계란, 호박과 알밤, 참기름을 담은 병들의 풍경이 정겹다. 강단 아래 하얀색 포대에는 우루실나(우르실라)라는 봉헌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 없던 조선 여인이 믿음으로 얻은 새 이름을 적어 바친 기쁨의 예물이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백여년 전 호남의 한 여성이 고백한 추수감사찬송을 발견해 읽었다. 청교도와 칠면조의 이야기로 점철된 미국의 낯선 축일로만 여겨졌던 추수감사절이, 이 이름모를 여성의 찬송 운율을 따라 우리의 숨결이 깃든 잔칫날로 새롭게 바라보이게 된다.
그녀의 노랫말에는 한반도의 삶 터를 향한 애정과 농촌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다. 농부의 겸허함에 하늘과 땅에 대한 굳은 믿음이 단순한 가사로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이 인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잘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이듯… (시 127:1)
오늘 나는 지난 한해 어디에서 땀 흘렸고, 무엇을 거둘 때가 되었는지 헤아려 보다 이내 포기했다. 곤두박질치는 생이 서러워 쉬이 단념하거나 투정만 부리던 못난 나를, 그래도 인내하고 기다리며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그 분께 감사, 감사, 또 감사밖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홍승표목사
=====================
<추수감사일찬송(秋收感謝日讚頌)>
전주 이부인
〈1절〉
밭 갈고 씨를 뿌려 힘쓰고 애쓰나
잘되게 하실 이는 하나님뿐일세
동설(冬雪)로 밭을 덮고 춘풍우(春風雨) 보내며
여름 볕 장맛비로 곡식 일구시네
〈2절〉
하나님 아버지여 감사하옵니다
오곡백과를 주사 잘 먹게 하시니
은혜를 갚으려고 연보를 드리며
달라진 우리 맘을 같이 바칩니다
〈후렴〉
천하 만민들아 대주재 찬송해
그 영화로우신 이름은 여호와시로다
(전주 이부인, “추수감사일찬송”, <기독신보>, 1920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