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드케누, 하나님의 공의
렘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민교회에서 2세 자녀들에게 자주 듣는 부모님에 대한 불평 중 첫번째를 차지하는 것이 이중 잣대(double standard)입니다.
부모 자신과 자기들에 대한 잣대가 달라서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자신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때 그때 편의에 따라 약속을 쉽게 어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법가사상을 다룬 책 ‘한비자’에 ‘증자살체(曾子殺彘)’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하루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어린 아들이 시장에 가는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증자의 아내는 아이를 달랩니다. “얌전히 기다리면 돼지를 잡아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니 증자가 마당에서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내는 “그냥 해본 소리”라며 말렸습니다. 증자는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 배우는 법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가 뭘 배우겠느냐”며 기어이 돼지를 잡습니다.
아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약속의 중함을 알려주는 ’사자성어‘가 바로 ’증자살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공의(公議)’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중잣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에 스스로 억매이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공의(치드케누)에 담긴 뜻입니다. 공의는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를 줄인 말입니다.
인간 사회에 불공평하고 부정한 일들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예레미야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담겨있습니다. ‘여호와 치드케누’(우리의 공의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왕조 말기에 왕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야 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은 후대 남유다 왕들은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불의와 불공평으로 판결했고, 연약한 백성들을 탈취하고 억압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공평한 판결을 하여 그 지혜로 유명했지만, 화려한 궁전을 짓기 위해서 13년, 성전을 짓는다고 7년, 도합 20년 동안 건축을 위해 백성들에게 중노동과 무거운 세금을 강요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선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더욱 철권정치를 하겠다고 해서 북쪽 열 지파를 잃고 겨우 남쪽 두 지파만의 왕이 되는 불행을 자초합니다.
그 이후 대부분의 왕들이 불공평과 불의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착취하였습니다. 특히 남유다 말기 왕들의 불의와 불공평은 극에 달했고 연약한 백성들은 착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의 세 차례의 침공으로 완전히 망하고, 빈천한 자들만 남고 세도를 부리던 자들은 다 끌려가게 됩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가고 그의 두 아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불의와 불공평으로 백성들을 억압하다가 이방 나라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왕들을 보며, 신음하고 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예례미야를 통해 위로와 소망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고,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고, 평안히 거할 것이라는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그의 이름이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치드케누’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러 오신 분입니다. 그 공의와 사랑에 스스로 매이신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치드케누’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하나님의 공의 주 독생자 그의 나라 임하시네 예수 제물이 되신 주 영광 중에 그의 나라 임하시네 주의 나라 영원하며 그의 영광 무궁하리 왕의 위엄과 능력이 이제 임하였으니 주의 주권과 주의 통치와 주의 나라 힘과 권세 임하네 예수 하나님의 공의”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의를 덧입혀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의를 실현하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의로우신 왕의 통치를 받기 때문에 불의에서 벗어나 의를 실현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치드케누에 담긴 의미입니다.
오 주여
예수 하나님의 공의를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우리 안에
지속되도록 하소서
‘치드케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