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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터널(Hezekiah Tunnel)

히스기야 터널(Hezekiah Tunnel)
기혼샘 윗물을 막아 히스기야 터널을 뚫어 성안으로 끌어 들인 곳이 바로 실로암입니다.  히스기야 터널은 기혼샘의 물을 예루살렘 성읍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 터널입니다. 이 터널은 BC 6세기에 건조된 그리스의 유팔리오스(Tunnel of Euphalios) 터널과 함께 인류 고대사에 가장 위대한 수류 공법(The Greatest works of water engineering technology)으로 간주되는 곳입니다. 만약 터널을 직선으로 뚫었다면 40%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335m(1070ft)에 불과한 그 거리를 왜 530m 라는 곡선거리로 뚫게 되었을까요? 이 부분은 히스기야 당시의 복잡한 상황과 예루살렘 암벽의 구조와 그리고 토목공법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역대하 32장 1-4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취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그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저희가 돕더라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로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짧은 구절로 말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대단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앗시리아(앗수르)의 유다 침공 가운데 기혼샘의 물을 공급받아 생존하게 된 이야기는 왕하 20:20에서 나옵니다. 생명줄처럼 귀한 기혼샘의 물줄기를 돌려 성안으로 끌어 들인 것은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전쟁의 승기로 적군인 앗수르에게는 물줄기를 차단해 버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천사가 손을 드니 성밖에 있던 앗수르 군대 185,000 명이 일거에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19:35). 이사야는 앞서서 산헤립의 죽음을 예언합니다. (사 37:7) 패잔병이 되어 돌아 온 앗수르 왕 산헤립은 제국의 수도 니느웨에서 그의 신인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들인 아드라멜렉과 사레셀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두 아들은 아라랏 지방으로 도망합니다(왕하 19:6-7).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인 에슬핫돈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산헤립이 유다 침공은 일은 BC 701년입니다. 이미 라기스를 점령하고 노도처럼 밀려 오는 앗수르의 침공으로 위기에 봉착한 히스기야는 한편으로 성을 보호하고 또한편으로 적군인 앗수르에게 물의 공급을 차단해야만 했습니다. 대하 32:30 에 보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 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기혼의 물줄기를 533 m에 달하는 통로를 통해 가이 와디(Gai wadi)가 되게 한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첨단 기술이 없던 시기에 양쪽에 암벽을 파고 들어가는 터널을 만들어 거의 오차없이 양쪽이 만나게 된 점에는 많은 궁굼점이 있어 왔습니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틈새를 따라 뚫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히스기야의 명령에 따라 유다의 공병대는 암벽을 뚫기 시작하였고 이는 다윗성 밖에 있던 기혼 샘 물줄기를 예루살렘 성안의 실로암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굴의 폭은 60cm 의 매우 좁은 공간으로 쾌쾌한 그을음과 돌가루 날리는 척박한 상황에서 청동제 도끼로 바위를 쪼개어 나가는 작업은 최악의 환경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이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하는 앗수르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완성되어야 하는 시급함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공학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그 암벽을 매우 짧은 시간에 뚫게 되었고, 당시의 공사 현장 작업을 설명한 비문이 그 신비로운 광경을 설명해 줍니다. 전체 길이 533 m 가운데 지하 터널의 기울기는 0.06%, 즉 양쪽의 고저 차이가 고작 32㎝에 불과하다고 하니 그 놀라운 토목공학의 기술에 놀란 입을 다물기 어렵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히스기야 터널이 발견된 것은 매우 후대의 일입니다. 1838년 미국의 성서지리학자 로빈슨(Edward Robinson)은 기혼샘에서 부터 시작된 좁은 터널을 발견하고 그 물줄기가 실로암까지 연결된 것을 탐사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널이 만들어진지 2천5백년 동안 터널 안에는 물과 혼합된 진흙이 깊게 쌓여 있어서 그는 긴 터널을 기어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터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30년 뒤의 일입니다. 1867년 영국 탐험가인 찰스 워렌 대장(Captain Charles warren)이 이 터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탐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당시의 히스기야 터널은 기혼 샘 물줄기를 거의 수직차 없이 실로암 연못으로 이끌어 간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그는 기혼샘과 터널 그리고 실로암 연못 뿐 아니라 새로운 사실 하나를 더 발견합니다. 기혼샘 바로 수직으로 11m 나 되는 터널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워렌은 이를 두고 사무엘하 5장 8절에 다윗의 장수인 요압이 이 ‘수구’를 타고 들어 간 것으로 보았습니다.

히스기야 비문(Hezekiah Inscription)

히스기야 터널의 비밀을 밝히는 결정적인 사건은 터널 가운데 새겨진 비문의 발견입니다. 실로암 연못에 놀던 팔레스타인 아이 하나가 물이 흘러 나오는 지하 터널 6m 정도 우연히 들어 갔다다 터널 입구에 들어 오는 빛에 반사된 벽에 새겨진 글씨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소문을 예루살렘에서 탐사중이던 영국인 고고학자 콘더(C. R. Conder)와 세이스(A. H. Sayce), 독일인 구테(H. Guthe) 가 발견하고 비문 해독을 시도합니다. 터널 안에 위치한 고대 히브리어로 씌여진 이 비문은 예루살렘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고대 문서본이기도 합니다. 모두 여섯 줄로 2백자가 기록된 실로암 비문은 터널의 공사 현장을 살아있는 문체로 설명해 줍니다. 해독된 비문의 내용에는 “암벽 양쪽에서 땅을 파는 자들이 3 규빗(1.3m) 늘 남겨 놓고서로의 망치 소리를 들게 되었고, 그들은 상대방을 부르며 나머지 뚫고 중앙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생생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 줍니다. “터널이 뚫렸을 때 동료를 얼싸안고 도끼를 서로 부딪쳤으며 물은 샘으로부터 1천2백 규빗(5백25m)을 흘러나왔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영문은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다.

“[…when] (the tunnel) was driven through. And this was the way in which it was cut through: While […] (were) still […] axe(s), each man toward his fellow, and while there were still three cubits to be cut through, [there was heard] the voice of a man calling to his fellows, for there was an overlap in the rock on the right [and on the left]. And when the tunnel was driven through, the quarrymen hewed (the rock), each man toward his fellow, axe against axe; and the water flowed from the spring toward the reservoir for 1200 cubits, and the height of the rock above the head(s) of the quarrymen was

이렇게 소중한 역사적 문서인 비문도 1890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한 그리스도인 떼어 내어 부서진 비문 조각을 팔게 되었고 이 비문이 이스탄불 제국 박물관의 손에 넘어 가게 됩니다. 바로 원본의 일부를 보여 주는 비문의 사진이 아래에 나와 있습니다. 비문 아래 사진은 비문을 떼어 내었던 원래 자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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