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배재학당 서관(西館)
▲배재학당 서관(1923). 후에 고덕동으로 옮겨져 지금은 배재고등학교 내에 있으며, 아펜젤러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배재학당 서관은 크게 늘어난 신입생 수를 감당하기 위해 1923년 3월에 배재학당 본당과 옛 삼문출판사 건물을 사이에 두고 배재학당 동관과 마주 보는 자리에 대칭형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따라서 건물의 외형은 배재학당 동관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건물이 막 완공된 때의 사진 자료는 「동아일보」 1923년 3월 8일 자에 수록된 것이 남아 있어 참고할 만하다. 이 사진에 보면 당시에도 본당 건물과 옛 삼문출판사 건물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벽돌 3층짜리인 이 건물은 1984년 2월 28일 배재중고등학교가 서울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할 때에, 그곳으로 함께 해체·이전하였고, 지금은 강동구 고덕동 배재학교 교내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문출판사 전경. 감리교선교부가 배재학당 내에 설치한 인쇄소를 겸한 출판기관으로, 1889년 배재학당 본관 지하에 두었다가, 1892년 본관 뒤편에 별도 건물로 지어졌다. |
5. 배재학당 강당(講堂)
이 건물은 배재 창립 50주년을 위한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건립된 콘크리트와 벽돌이 혼합된 2층짜리 구조물이다. 1932년 10월 22일에 정초식을 가졌고, 이에 앞서 그해 9월 26일에 기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강당은 공비 2만 4천 8백 원으로 역사 깊은 조선 최초의 벽돌집으로, 본관을 헐고 그 자리에 460평의 2층 벽돌집을 세울 터인데, 공사는 9월 26일부터 착수하여 명년 1월에 준공할 예정이며 건양사(建陽社)에서 청부하였다.”1)
▲배재학당 강당(1933). 건축 당시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설을 갖춘 건물로 건축되었으나, 2004년 배재빌딩의 신축으로 인하여 헐리게 되었다. |
이 건물의 초석(礎石)은 옛 배재학당 본관의 그것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강당 건물이 옛 배재학당 본당 건물에 세워진 듯이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약간 남쪽으로 비껴난 자리에 건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본당 건물이 헐린 때를 흔히 이 강당의 기공 직전에 이뤄진 것으로 오인하여 설명하는 자료들이 적지 않으나, 실제로는 1929년 9월 26일에 벌써 철거공사가 이뤄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아일보」 1929년 9월 27일 자에 수록된 관련 기사로도 틀림없이 확인되는 사실이다.
배재학당 강당은 1932년 9월 착공 이후 해를 넘겨 1933년 5월 말일에 준공을 보았으며, 곧이어 창립 48주년 기념일인 1933년 6월 8일에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 건물은 1984년 배재중고등학교의 고덕동 이전 이후에도 여타 건물들과 더불어 다른 용도로 전환되어 사용되다가, 2004년 1월에 준공된 배재 복합빌딩의 신축 공사가 벌어지는 통에 헐려 사라지고 말았다. <계속>
[미주]
1) 「동아일보」, 1932년 10월 22일 자 보도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