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감리교 목사가 자기 교인 한 사람을 입원시키기 위하여 엑스레이(X-Ray) 사진을 가지고 와서 독실한 감리교인이니까 꼭 입원시켜 달라고 나 선생님에게 부탁하였다. 그런데 나 선생님은 뜻 밖에도 불교신자였던 환자를 먼저 입원시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감리교 목사는 대단히 화가 났다. 이 목사가 나 선생님에게, “당신은 감리교에 충성스럽지 못하다”라고 항의하면서 화를 냈다. 감리교인 대신에 불교신자를 먼저 입원시키다니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때 나 선생님은, “요양원에 누가 먼저 입원해야 하느냐는 흉부 엑스레이가 보여주는 병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감리교인, 비교인(교인이 아닌 사람)의 표시가 없지요!” 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나 선생님은 감리교 선교사이면서도 초교파적일 뿐만 아니라, 신자 비신자도 가리지 않던 공정한 사회사업가였다. 사회적 계급이나 종교와 신앙의 차이를 묻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분이다.
대전 시외 중리 산에 있던 기독교 결핵요양원에 입원하자면, 결핵환자 수는 많은 데다가 침상 수가 26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침상 차례까지 올 때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누구를 먼저 입원시켜야 하느냐는 입원규정은 나 선생께서 언제나 의사들의 소견과 입원 신청한 환자들 병의 상태를 고려하여 결정하였다.
나 선생님은 미 감리교에서 파송되어 온 선교사였지만 비 기독교인들과 더 가까이 지냈으며 기독교인 중에서도 비 감리교인과도 친교가 두터웠다. 그런 까닭으로 감리교 사회에서 다소 문제가 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라 나 선생님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하여 항상 마음 아파하였다고 하는 것이 그분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사랑하며 춤추라>, 나애시덕(Miss Esther J. Laird, 羅愛施德), 218~9p, 신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