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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주 한인이민의 역사

지금부터 백 년 전, 1903년 1월 13일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들이 미국의 영토인 하와이에 오게 되었다. 한국이 미국과 수교한 지 20여 년 만에 이곳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102명의 한인들이 정식으로 이민 오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요청과 이들을 도와준 감리교 선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은, 1620년 메이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플리머스(Plymouth Rock)에 도착한 청교도들의 수가 102명이었다는 것과, 이들이 배 안에서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스(Massachusetts)에 도착하자마자 예배를 드리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이 첫 한인들의 이민들과 꼭 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지?

하와이에 미국의 기업인들이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이다. 기업이 번창하여 한 때는 설탕 수출이 하와이 총 수출액의 95%나 차지할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하와이 본토인들을 농장에 고용하였으나 일손이 모자라게 됨에 따라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여야만 했다. 그래서 중국인, 포르투갈인, 일본인 등을 데려와 노동력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특히 중국인들이 하와이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까지 많이 밀려와 일함에 따라 이들을 두려워한 연방정부는 1882년 5월 6일에 Chinese Exclusion Act라는 악법을 만들어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인들의 이민을 금지하였고, 다시 이 법을 수정하여 계속 그들의 이민을 막아왔다. 그리하여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난 하와이에는 1890년대를 전후하여 많은 일본인들이 와서 농장에서 노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맹 파업을 자주 하여 농장주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고용 계약을 마치면 임금이 더 높고, 노동 환경이 더 나은 본토, 특히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함에 따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는 노동력이 계속 부족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농장주들은 한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사탕수수 농장주 협회 이사회는 때마침 휴가를 얻어 고향인 Toledo, OH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알렌 공사를 하와이에 초청하여 그의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알렌은 잘 알려진 대로 한국에 온 최초의 장로교 의료 선교사로서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고 거의 죽게 된 척신 민영익을 살려 줌으로써 조정의 신임을 얻은 인물이다. 그들은 알렌이 조정의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알렌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이민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에 돌아 온 즉시 고종을 알현하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뜻을 전하고 그의 윤허를 받아 내었다.

이제 이민을 모집하여 보낼 일을 할 사람을 찾는 중에, 같은 오하이오 주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 데쉴러(Deshler)라는 사람을 만나 이민 업무를 맡겼다. 정부에서도 “수민원”이라는 기구를 “의정부”에 새로 만들어, 민영환으로 하여금 그 총재직을 맡게 하여 여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데쉴러는 곧 농장주 협회에서 보내준 돈 $ 25,000을 자본금으로 하여 데쉴러 은행을 설립함과 동시에 바로 “내리감리교회” 옆(현 교육관 건물)에 동서개발회사를 차리고 이민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민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상의 묘를 등지고 바닷길로 열흘이 넘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은 천하에 불효자식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때 그 어려움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이 분이 바로 “내리감리교회”의 담임자로 사역하고 있던 존스(Geroge Heber Jones 趙元時) 목사였다. 그가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생활이 궁핍하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이 기회가 그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이민을 장려하고 나섰다. 그는 이민 모집 광고에 있는 대로, 미국에 가면 학교는 무료이며, 영구적인 직업을 얻기가 쉬우며, 법률의 제반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대한 돈으로 오십 칠원 가량”($15)을 매달 받으며, 농부들이 “유숙하는 집과 나무[땔감]와 식수와 병을 치료하는 경비는 주인이 직급”한다고 말하며 이민을 장려했다.

이리하여 “내리감리교회”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민의 길에 올랐다. 인천에서 존스 목사의 전송을 받으며 떠난 50여 명의 감리교인들은 일본 나가사끼(長崎)에서 배를 갈아타고 하와이에 가는 동안 배 안에서 매일 예배를 보며 항해하였다. 그 첫 배에는 “내리감리교회”의 안정수 권사와 김이제 권사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인 감리교회의 시작은 태평양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이 호놀루루에 도착하였을 때 미리 존스 목사의 연락을 받고 나온 피어슨 하와이 감리사가 마중을 나왔다. 하와이에서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마지막으로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은 모두 86명(남자 48, 부인 16, 자녀 22)이었다.

이들은 곧 오하우(Oahu)섬 Waialua Plantation에 있는 Mokuleia Camp에 여장을 풀고 첫 생활을 시작하였다. 물론 첫 감리교회의 예배 처소도 이곳에 세워졌다. 이민의 행렬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한국이 국권을 잃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민자들 속에 계속 기독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인들이 있던 캠프에는 어디에나 예배 처소가 있었다. 이들이 곧 한인 감리교회의 모태가 된 믿음의 공동체였다. 하와이에는 장로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장로교 교인들은 자연히 모두 감리교인이 되었다. 초창기에 성공회도 있었으나 그 세는 약하였다.

농장주들은 한인 노동자들이 무엇보다 교회를 먼저 세우고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기뻐하였다. 존스 목사의 1905년 보고에 의하면 하와이 한인들의 삼분의 일(⅓)이 신앙고백을 한 기독교 교인이었다고 한다. 하와이 교회의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1905년에 모든 하와이 감리교인들 중 65%가 한국인이었으며, 1910년에는 68%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인 감리교회는 활발하게 사역하던 교회였다. 당시에 한국에서 훈련을 잘 받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감리교회는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기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는 곧 감리교회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100년의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교회로 자라고 있다. 초창기에 가졌던 감리교도들의 열정을 우리가 지금 어떻게 계속 가지고 나갈지, 이 기회를 통하여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김찬희 박사,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명예교수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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