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 디아스포라 전쟁

성서의 땅, 디아스포라 전쟁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상은 ‘노벨 평화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벨 평화상은 가만히 앉아서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이 아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에게 그 상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화상을 포함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유대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00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93명이 유대인입니다. 약 3분의 1이 유대인입니다. 경제 분야에서 65%의 노벨상을, 의학 분야에서 23%, 물리 분야에서 22%, 화학 분야에서 12%, 문학 분야에서 8%를 유대인이 수상하였습니다.

미국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평균이 두 배입니다. 미국 인구의 2%입니다. 그런데 상위 400 가족중에 24%, 최상위 40 가족중에 4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변호사가 70만명입니다. 그 중에 20%인 14만명이 유대인입니다.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 50%가 유대인입니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국 국회위원 535명중ㅇ 42명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유명한 대학 프린스톤 대학, 하버드 대학의 교수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총장, 주요 행정 책임자의 90%가 유대인입니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스컴 뉴욕 타임즈 사장 슐츠버그(Shultzburger), 워싱턴 포스트지 사장 케서린 그레그레이엄(Catherine Graium), 가장 출판을 많이 하는 램덤 하우스(Randum House) 사장이 유대인입니다. <세계속에 영향을 미친 유대인 100명>이란 책을 보면 모세, 솔로몬, 예수님, 바울,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가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외교가 키신저, 쉰들러 리슽, 쥬라기 공원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등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작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일가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탈무드에서 나옵니다.

  1. 탈무드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토라대로 열심히 살다보니 미슈나가 생겼습니다. 토라는 성경이고 미슈나는 예식서입니다. 소위 예수님이 말씀하신 <장로의 유전>입니다. 미슈나대로 열심히 살다 보니보니 게마라가 생겼습니다. 게마리는 장로 유전 해석서입니다. 게마라를 잘 정리하다 보니 탈무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생긴 아름다운 이야기들입니다. 탈무드는 <위대한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노벨상을 많이 수상한 유대나라, 만나면 서로 샬롬(Shalom)이라고 평안을 기원하는 이스라엘이 평화대신 전쟁을 선택하고 팔레스타인과의 내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발자취가 서려있는 성서의 땅, 이스라엘에서 끊임없이 반목과 대립, 갈등과 분쟁, 유혈전쟁이 일어날까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아랍인(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아랍인들은 1967년 6일 전쟁 이전까지 요르단 통치하에 있었던 동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뜻을 대개 ‘평화의 도시’(이르=도시, 샬롬=평화)로 이야기하지만 어원적으로는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단지 수메르어 ‘우르(도시)’와 ‘살렘’이라는 신명(神明)이 합쳐진 것으로 보는 설명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크게 구예루살렘, 동예루살렘, 그리고 계속 확장되고 있는 신예루살렘의 3지역으로 나누어집니다. 구예루살렘은 2만명이 살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지역, 모슬렘지역, 크리스찬지역, 유대지역, 성전산지역등으로 나뉘며 동예루살렘은 아랍인들이 운영하는 상점, 호텔, 식당 등 아랍인들의 상권지역으로 늘 붐비는 지역입니다. 신예루살렘은 정부기관과 상업지역이 형성되어 있고 이스라엘 박물관, 성지 박물관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인 예루살렘(평화의 도시, 이르=도시, 샬롬=평화)은 3천년전 다윗왕국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수많은 침략자들에 의해 주인이 바뀌는 험난한 역사와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사진: 이수정의 이스라엘 이야기)

다윗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음으로써 종교적인 의미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시야의 중앙성소화 작업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글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유일한 성소가 되자 예루살렘은 종교의 중심지로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일반적인 수도가 가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영원한 정신적인, 영적인 고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늘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를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122:6)”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 한 개인을 두고 민족을 이야기 합니다. 야곱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면서 ‘이스라엘’이란 말이 최초로 언급되고 이는 장차 그 민족의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히브리 민족은 이집트에서 장정 60만 명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에는 국가 없이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이 와서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나일 강에 던져도 아무 대항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법을 받고 군대를 조직하고 가나안에 들어가 영토를 확보하면서 명실 공히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를 걸쳐 다윗과 솔로몬 왕이 통치한 이후 한 민족 두 국가, 즉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형태로 200년을 지냅니다.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혼자 150년을 더 유지했지만 결국 국가의 문을 닫고 바벨론에 70년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하면서 그 당시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남유다 백성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당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끌려온 포로들과 섞여 있었기에 바벨론 사람들은 남유다 백성들을 다른 나라 백성들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을 유대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집트 사람이 지어준 이름 히브리인, 출애굽에서는 이스라엘, 그리고 나라가 둘로 나뉘었을때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루살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과 회교도들에게도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역이 마무리된 곳이지만 한편 회교도들에게 있어서도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한 도시로 이 곳에서 모하메트가 승천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3대 유일신 종교 모두 중요한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는 도시로서는 예루살렘이 유일하기에 예루살렘을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재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볼때에도 이스라엘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개 대륙의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각 대륙에서 큰 세력이 일어나 다른 대륙을 점령하려고 할 때 반드시 지중해 인근의 이스라엘, 즉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적, 정치적,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 예수님의 생애가 곳곳에 기록된 의미있는 땅이면서 오랜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중동지역의 가장 중요한 순례의 중심지가 되어 왔습니다. 아울러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전쟁터,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불쏘시개’라고 불리우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아랍)인간의 분쟁의 땅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1948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린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몇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날인 동시에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두 내 쫓겨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 ‘유대인의 유랑’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유대인들은 2번이나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 침공 당시 포로로 끌려갔을 때이고 두 번째는 서기 70년 로마제국의 예루살렘 함락으로 추방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2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다시 모여 ‘시오니즘(Zionism)’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현재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1948년 이전의 영토에서 22%로 줄게되고 지난 2천년 가까이 이 따에서 살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들은 주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등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근거로 팔레스타인땅이 자신들의 선조의 땅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첨예한 대립은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갈등과 분쟁과 보복과 살인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지금 중동지역의 이슬람국가중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이집트와 요르단 뿐입니다. 그리고 육로를 통해 이스라엘로 들어갈 수 있는 국경은 가자(Gaza)와 타바(Taba), 요르단과 접해 있는 킹 후세인 다리(King Hussein Bridge)뿐입니다. 이 3개의 국경중 가장 유명하고 많이 이용하는 국경은 요단강을 잇은 킹 후세인 다리로 이스라엘 이르면 알렌비 다리(Allenby Bridge)로 그 이름이 바뀐다고 합니다.(참조: 바이블루트, CBS미디어)

한 유명한 철학자가 현재 이스라엘 나라의 내분을 예언하였는데 그 이유를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씨앗)나그네의 기질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즉 한 나라에 갇혀서 답답하게 살기 싫어하는 습성으로 인해 결국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고 또 다시 흩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47:9)

야곱이 자기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였는데 바로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도 자기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거기서 나그네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출2:22)

애굽의 430년 생활이나 바벨론의 70년 생활이 모두 나그네이며 지금도 세계 900만이상의 유대인들이 나그네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2/3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00-1,500만명의 유대인중에 500만 명만이 국내에 살고 있는 나머지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나라가 없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들의 핏속에 유목민의 기질 즉 나그네 생활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 모두 나그네와 같이 이동하기를 좋아하고 국경을 넘어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민족적인 은사가 있는데 자신들의 은사들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피를 흘려야만 하는 전쟁에 사용되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정전 6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민족은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쓰라린 동족상잔의 전쟁의 경험해 본 민족입니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한 민족, 두 국가의 형태를 가진 민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UN(United Nation)에도 남한과 북한은 각각 다른 두 개의 국가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1945년에 설립된 국제기구 UN에는 현재 193개국가가 가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UN이 창립되던 해에는 51개 국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배 가까운 숫자의 나라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민족들이 독립을 이루어가며 국가를 이루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쟁의 화약고’인 이스라엘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한 공동체가 있어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와하트 알 살람(Wahat al-Salam)’이라고 불리우는 ’네베샬롬‘입니다. 이 곳은 1972년 도미니크 수도회의 부루노 휴샤르 신부가 만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입니다. 각각 스무 가구로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은 50여가구에 약 250여 명이 서로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마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카톨릭 신부이기에 3개의 종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의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은 자신의 공동체내에서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있고 외부와 내부의 압력이 심하지만 현재 주민의 수보다 두 배가 넘는 500여명의 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을때 평화를 위한 공존의 가능성에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을에 속한 ‘평화의 학교’는 졸업생이 수천명에 이르는데 교육방식은 유대인과 아랍인들을 모아놓고 대충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각 민족의 종교와 역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근현대에 벌어진 분재의 역사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고 합니다. 모든 수업은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함께 진행합니다. 두 사람의 교사가 동시에 진행할 때도 있고 번갈아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도 피하거나 감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 문제를 놓고 아이들끼리 심한 언쟁을 벌이지만 ‘서로의 다름’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유대인 학교나 아랍인 학교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이 수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유대인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유대인을 위한 교육을 하고 아랍인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유대인에게 대적할 것인가를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단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을에서 마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중고등학교 과정을 허가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마을 내에서 유대인과 아랍인간의 차이를 이겨내고 결합가정을 꾸려 나가기도 하고 더러는 이스라엘군에 입대를 하거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분쟁의 첨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적어도 서로에게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출처:‘바이블 루트’ p298-299, CBS특별기획)

태어나서 전쟁만을 보며 자란 성서의 땅, 팔레스타인 아이들, 아버지나 삼촌 혹은 큰 형들이 날마다 총을 손질하며 적개심을 불태우고 밤이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과 포탄을 걱정하며 자라야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자라서 아버지와 형들이 메던 총을 이어서 메야 하는 아이들을 볼 때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게 됩니다.

샬롬(Shalom)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마음의 평안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삶의 영역, 육체와 마음, 가정과 사회, 나라와 민족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고 주의 얼굴빛이 비추어지는 건강과 생명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나라 샬롬의 평화는 땅의 정복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삶의 자리를 이해하며 사람과 사람과의 인격적이고 책임적인 만남,상호책임성(Accountability)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유대인구의 1%의 비율도 안되지만 이스라엘 현지에서 유대인, 아랍인, 모슬렘들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 그리스도인들(Messianic Jew)과 언어와 문화, 공간적인 삶의 자리는 다를지라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부름의 현장속에서 평화와 정의를 꽃피우고 지켜내기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미음은 미움을 낳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 눈물과 아픔이 서려있는 평화의 꽃이 시들어 버린듯한 팍팍한 성서의 땅, 이스라엘에도 이제는 유대인(Jews) 팔레스타인(Palestine), 모슬렘(Islam), 유대 기독교인(Messianic Jews,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 기독교인(Christian)간의 끊없는 디아스포라 보복전쟁이 그치고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까지 그토록 원하셨던 화해와 용서, 샬롬의 평화가 깃들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더불어 의미있는 결단과 행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히브리어로는 ‘아담’이라고 하며 흙은 ‘아다마’라고 말합니다. 즉 흙과 사람이 같은 어원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나라의 대부분의 땅은 석회석 성분이 많아 씨를 뿌려도 돌 위에 떨어지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석회석 성분이 많기 때문에 1주일만 지나도 밭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계속해서 밭을 기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말씀과 기도, 성령으로 새롭게 기경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어느새 미움과 증오, 쓴뿌리가 자라나 옛 사람의 습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밭을 기경해주시고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바꾸어주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성서의 땅,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희망의 빛을 비춰주셔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모슬렘, 기독교인과의 디아스포라 보복전쟁이 그치고 그곳에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화해와 용서, 사랑과 평강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울러 민수기 6장 24절에서 26절 말씀 제사장의 축복기도가 이곳과 예루살렘땅에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장재웅목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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