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3장 1-44절
본문해설: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기적으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이후로 지켜야 할 절기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먼저, 하나님은 안식일 규정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3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살겠다는 고백이며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먹고 살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말고 거룩한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유대력(유대력은 우리의 음력처럼 달의 순환을 기초로 하여 만든 월력입니다)으로 1월 14일에는 유월절을 지킵니다(5절). 그 다음 날부터 일주일은 무교절입니다(6절). 무교절 첫 날과 마지막 날은 안식일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말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들이 피난할 때처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조상들의 고난을 기억합니다.
첫곡식을 추수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9-13절).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전에 첫곡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행위입니다(14절). 첫곡식을 드린 후 오십 일째 되는 날에 또 한 번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15-21절). 곡식을 추수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구석에 있는 곡식을 남겨 두고 땅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아야 합니다(22절).
유대력으로 7월 1일은 거룩한 날로 지정하여 안식일처럼 지켜야 합니다(23-25절). 7월 10일은 ‘욤 키푸르’ 즉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해 속죄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대속죄일 예식에 대해서는 16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날,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고 “고행”(27절)을 해야 했습니다. “고행”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몸을 괴롭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사용했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금식이었습니다.
유대력으로 7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33-36절, 39-43절). 이것은 조상들의 광야 유랑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집 바깥에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매 주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더하여 이렇게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37-38절).
삶의 묵상:
절기에 관한 규정을 보면,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살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 온 비결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 그리고 매 년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면서 조상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역사와 전통을 면면히 이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주요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추수를 시작할 때와 추수를 마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한 것도 역사와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업을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3장에서 일 하지 말라는 명령이 열 번(3절, 7절, 8절, 21절, 25절, 28절, 31절, 32절, 35절, 36절) 반복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생업을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게 하는 이유는 이미 주신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땀 흘려 일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 때문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역사와 인생의 참된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축하하고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 일에 중독되어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루쯤 일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이 무신론적이고 물신적인 세상에서 정기적인 안식은 가장 절실한 일이 되었습니다. (사귐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