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비전양식(요한복음 10장 22-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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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설
“성전봉헌절”(22절)은 과거에 “수전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2월에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는 것처럼 ‘하누카’라는 절기가 수전절입니다. 주전 2세기에 셀류시드 왕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 당하고 성전이 훼손되었을 때 마카비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도 많은 남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왔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마카비같은 메시아가 나타나 주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거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들은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24절)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25절)고 답하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한 말이나 더 강력한 표징이 아니었습니다. 믿으려는 마음 자체가 그들에게 없었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당연하게 받아 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26-27절). 양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목자이신 예수님께 맡겨 주신 양들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에 양들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양들은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립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27-30절).
예수님께 의혹과 적개심을 품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돌을 들어 치려 합니다(31절). 율법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레 24:16). 그러자 예수님은 주님께서 선한 일을 하는데 왜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32절). 그들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33절). 예수님은 시편 82편 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다면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그분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은 더욱 그렇게 불릴만 하다고 하십니다(34-36절).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는 일을 제대로 본다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안에 있다는 것”(38절)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잡으려 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손을 피하여 벗어나셔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유대 광야에 머무십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아와 믿게 되었습니다(39-42절).
✍️삶의 적용
인생에 있어서 마음은 등불과 같고 항해자의 키와 같습니다. 마음이 정하는 대로 보고, 마음에 있는대로 말하고 마음이 정한 대로 걸어갑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제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어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천둥과 같은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반면, 마음이 여리고 예민하고 열려 있으면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도 볼 수 있고 세미한 음성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손잡이는 안에만 있습니다. 밖에서는 그 마음을 열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문을 닫아 놓으면 누구도 그 마음을 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무슨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표징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기로 마음의 문을 닫아 놓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반감이 점점 더 굳어져 갑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에게 마음이 열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눈이 점점 더 열리고 귀가 밝아집니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 4:23)라는 말씀의 의미를 절감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