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최초의 만세운동(100년전 도쿄)

100년 전 도쿄 한복판서 울려 퍼진 최초의 만세운동

100여 년 전 당시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의 만세운동은 한달 뒤 국내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후일 역사에서 ‘2·8독립선언’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계기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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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재일 유학생 단체 사진.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는 보기 드문 함박눈이 내리던 날, 재일본도쿄조선YMCA(이하 조선YMCA) 2층 강당으로 조선에서 온 젊은 유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날은 조선유학생학우회 정기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조선인 청년 600여 명이 강당을 가득 채웠음에도 일본 경찰의 감시가 느슨했던 이유다. 하지만 총회는 돌연 독립만세 소리와 함성으로 바뀌었다. 이날 최팔용, 이종근 등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은 조선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한 2·8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조선청년독립단은 2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 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라.”

아산정책연구원 김석근 수석연구위원은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 100주년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2·8독립선언에 대해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미국 유학파였던 윤치호는 ‘조선인들 마음 속에 민족 본능이 살아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2·8독립선언은 국내와 일본,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학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는 “일본의 심장부인 수도 동경에서 백주대낮에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놀랍고 또 장하기도 한 쾌거였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2·8독립선언은 3·1독립선언이 지향한 평화적 해결과는 대조되는 ‘영원한 혈전’을 다짐했다”며 “또 새로운 국가의 성격을 민주공화주의로 제시하는 등 독립운동의 이념적 틀을 명확히 한 주도면밀한 선언”이라고 짚었다.

시대 정신으로 자리 잡은 ‘민족 독립’

1914년 신축된 조선YMCA회관은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모든 한인 유학생들에게 개방된 사랑방이었다. 도쿄로 유학을 온 모든 학생들은 조선YMCA가 주관하는 일본말 보습 과정을 다니기 위해 최소 1년은 회관을 출입했다. 또 조선YMCA의 주관으로 열리는 토론회와 웅변대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양하기도 했다.

당시 유학생들은 일본의 중심지에서 지내며 새로운 세계 사조를 관찰하고 변화와 개혁에 민감했다. 그런 만큼 일본인과 조선인, 내지와 조선 사이에 놓인 벽을 피부로 여실히 느꼈다.

유학생들은 단순한 친목을 넘어서 민족과 독립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공유했다. 이명화 교수는 “당시에 대해 동아일보는 ‘어느 날은 모여 일본인들에게 당한 설움을 토로하고 어느 날은 조국 독립을 쟁취하는 방안에 대하여, 또 어느 날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밤이 새도록 토론했다’고 서술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기탄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YMCA회관을 거사의 장소로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8독립선언의 주체인 ‘조선청년독립단’ 역시 조선YMCA를 출입하던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됐다. 김석근 연구위원은 “‘독립’이라는 단어를 직접 내걸었다는 점에서 과감한 결단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유학생들에게 민족의 독립은 일종의 시대정신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조선유학생학우회가 독립선언서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미국 대통령 윌슨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였다.

김석근 연구위원은 “국내는 물론, 상해와 미주 등 독립지사와 소통을 하고 있던 젊은 유학생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파리 강화회의를 앞두고 조선인들이 주체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국제적인 원조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윤인경 ⓒ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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