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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영적독서(John Wesley’s Spiritual Reading)

웨슬리(John Wesley, 1703-91)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만큼 그는 성경 공부에 열중하였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서의 역할을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 학자들은 이런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저작을 출판한 사람이 바로 존 웨슬리였다는 것이다. 이는 웨슬리가 수많은 영성 고전들을 편집, 출판, 배포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인 편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부흥운동을 이끄는 한편 이렇게 영성 고전들을 출판·보급하는 일에 힘썼던 것일까? 그는 만년에 한 설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신자들이 꾸준히 영적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독서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1790년 11월 8일 편지). 이렇게 웨슬리는 영적 독서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리교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알려주는 책들”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General Rules of 1743).

웨슬리는 영적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많은 영성 고전들을 출판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혀두었다. 그는 1735년,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를 새로 번역하고 축약하여 《그리스도인의 모범》(The Christian’s Patter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면서, 서문에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을 담아 두었다. 다섯 항목으로 되어 있는 이 조언은 오늘날 우리가 영성 고전들을 어떻게 대하고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되어준다. 웨슬리의 당부를 함께 살펴보자.

  1. 시작 : 습관 형성하기

“첫째,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영적 독서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이것을 지키십시오.”

웨슬리는 신앙생활에서 습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자들이 삶에서 거룩한 질서와 규칙을 잘 정해두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가 얻게 된 별명이 ‘규칙주의자(Methodist)’이다! 사실 습관의 중요성은 웨슬리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적 스승들이 강조하는 것이다. 한 예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도 “습관의 폭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하도록 구부러진 우리의 욕망(충동),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그릇된 관습과 습관을 만들어 냈고, 이것들이 단단한 껍질처럼 우리를 둘러 싸버렸다. 그런데 이 습관의 완고한 저항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삶의 기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라는 것이다.2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성서와 영성 고전을 규칙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그릇된 “습관의 폭력”에서 벗어나고 새로이 거룩한 습관을 입는 길이다. 곧, 규칙적인 영적 독서는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독서를 위해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준비 : 순수한 의도, 간절한 기도

“둘째, 순수한 의도로, 오직 영혼의 양식을 얻고자하는 다짐으로 독서에 임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서, 독서하는 동안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깨닫게 해 주시고, 나아가 그 소원을 내가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단하도록 도우시고, 그것을 다 이루어 내기까지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비는 간절한 기도로 독서를 시작하십시오.”

웨슬리는 영적 독서를 위한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의도(The purity of intention)”라고 말한다. 이는 어떤 일을 실천할 때, 그 동기와 의도와 열망이, 자기 이익이나 자기 사랑에서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향한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의도의 순수성”은 영적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기독교의 기도와 모든 신앙 실천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열망’을 ‘하나님의 소원’에 일치시키셨던 예수님의 실천을 본받는 것이다(마25:40). 그러므로 영적 실천으로서의 책읽기도 반드시 나의 일부만이 아니라 나의 전부를 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다 그분의 뜻과 소원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면 이제 영적 독서를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하는지 살펴보자.

존 웨슬리가 편집하여 출간한《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인의 모범》(The Christian’s Pattern)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 진행 : 기억과 반복

“셋째, … 반드시 여유 있게, 신중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며 읽어야 합니다. 읽는 중간 중간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은혜가 그대에게 비추는 깨달음의 빛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이를 위해, 때때로, 읽은 것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지를 숙고하십시오. 그대의 읽기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되도록 하십시오. …… 그대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 특히 그대의 영적 성향에 적합하고, 그대의 실천에 요긴한 구절들은 반복해서 여러 번 읽는 것이 유익합니다.”

여기서 “읽은 것을 되돌아보고(recollect)”라는 말에는 중요한 영적 수련의 원리가 들어 있다. 신앙생활에서 기억(recollect)은 매우 중요하다. “기억한다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홀로코스트 기념비). 우리의 구원은 내 삶이 하나님의 구원사(史)와 만나서 그 역사의 일부로 엮여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 이야기를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반복적해서 여러 번 읽는 것”에도 영적 원리가 들어있다. 초대로부터 비롯된 영적 독서 실천 방법(art)인, 렉시오 디비나는 성서나 경건 서적의 구절들을 읽고(lectio), 그것으로 기도하고(oratio), 그것을 숙고하고(meditatio), 관상하는(contemplatio) 네 단계를 반복하면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기도 실천이다. 여기서 관상(觀想)은 기도자가 말씀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읽은 말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 하나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은 이러한 관상에 이르는 중요한 실천으로 여겨져 왔다. 웨슬리도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루치의 분량의 영적 독서를 진행하는 동안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구절을 하나 선택하여 그것을 호흡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영적 독서 동안 받은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지속으로 거하면서 하루를 살 수 있다.

  1. 지속 : 열정을 구하라

“넷째로, 그대가 읽은 것에 상응하는 감흥을 일깨도록 하십시오. 그저 지식만 더할 뿐 감동도 열정도 없는 독서는 무익합니다. 읽으면서 행간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더하십시오. 그분의 빛(지혜)뿐 아니라 그분의 열정을 구하십시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원리가 담겨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읽기가 지식만을 얻기 위한 독서(reading for information)를 넘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독서(reading for transformation)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영적 독서의 핵심이다. 이런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 감정, 의지까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독서할 때 우리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그 마음의 변화는 우리의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행동의 반복과 지속이 새롭고 거룩한 습관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변혁적 책읽기는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이성을 다하는 독서이며, 이를 통해 거룩한 말씀이 우리의 몸에 배게 된다. 즉 새 사람을 입는다(엡4:22-24). 웨슬리는, 마지막으로 이런 독서를 통해 얻은 마음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에 대해 조언하면서 그의 당부를 맺는다.

  1. 마무리 : 화살기도

“마지막으로, 항상 주님께 드리는 짧은 기도로 영적 독서를 마무리하십시오. 그리하여 …… 그대의 마음 밭에 뿌려진 좋은 씨들이 주님의 복을 받아 자라서 결실을 맺고, 그 열매가 영원한 삶을 낳게 하십시오.”

화살기도(ejaculatory prayer)란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찬미받으소서!” 등과 같은 짧은 경구로 간결하지만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영적 독서를 짧은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은 독서 중 받은 은사(gift)에 대해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치는 동시에, 그것들을 놓고 주님과 대화하면서 영적 독서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독서 중에 받은 은혜 속에 지속적으로 머물면서(관상), 동시에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사도직을 수행하며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활동).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장이

한국 교인들처럼 성경 공부에 열성적인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런 성경 공부에 대한 열심을 영성 고전 읽기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그리고 웨슬리의 조언을 받아들여 우리의 영적 독서를 심화시킨다면, 한국 교회는 분명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읽기는 우리가 성서의 세계를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하는 바탕과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고전 읽기는 성서의 깨달음을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도 힘과 지혜를 줄 것이다. 왜냐면 고전이란, 다름이 아니라 성경을 자기 삶으로 ‘번역’해 내려고 분투했던 신앙 선현들의 경험으로 빚어진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12세기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신학자였던 블루아의 피터(Peter of Blois, c.1130–c.1203)는 고전 독서의 중요성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들이 아무리 나에게 짖어대고, 돼지들이 꿀꿀댄다 할지라도, 나는 옛 선현들의 글을 본받아 행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언제나 나의 공부가 될 것이며, 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결코 이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장이들과 같다. 그 거인들 덕분에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우리의 고전 공부는 우리들의 소견보다 더 훌륭하고 정교한 선현들의 식견을, 시간의 망각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부터 꺼내어 새롭게 되살려내는 일이다.

– 블루아의 피터, “Letter 92,” Patrologina Latina, J. P. Migne 엮음, vol. 207, col. 209.

오늘날 수많은 비판과 잡음들로 주변이 소란하다. 이런 혼란을 벗어나 바른 길을 찾는 데에 영성 고전 읽기는 큰 유익이 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소견은 일천(日淺)할지라도, 영적 거장들의 어깨 위에 선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보다 더 높은 식견을 가지고, 바른 신앙의 길을 전망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 남기정 / 감리교 목사로 미국 버클리 소재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박사 과정에서 ‘기독교 영성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 (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다. 현재 ‘존 웨슬리와 초대 교부 마카리우스의 영적 감각론 비교 연구’라는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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