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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기독교와 역사

기독교와 역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가 반드시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하고 성경적이어야 하듯이 기독교는 역사적이어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그 역사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일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명백한 특징은 하나님의 계시(啓示)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구조 속에서 인간에게 계시되고 점진적으로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사(역사신학)야말로 바로 그러한 기독교의 특징을 분명하게 밝혀 주는 신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사를 ‘교회의 역사’ 혹은 ‘기독교 역사’라고 간단히 정의할 때, 일단 교회사도 ‘역사’라고 하는 보다 일반적인 학문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역사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후에 기독교와 역사와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Ⅰ. 역사에 대한 이해

Ⅱ. 기독교와 역사와의 관계

Ⅲ. 교회사의 범위

Ⅳ. 교회사 인식의 변환

Ⅴ. 교회사관의 실례

Ⅵ. 교회사 연구의 의의와 목적

 

Ⅰ. 역사에 대한 이해

  1.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기본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 그 자체를 가리키거나 그 과거에 대한 서술과 기록 또는 설명이라고 간단히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 과거의 사건 혹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만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히 과거의 모든 사건들 중에서도 인간과 관련된 과거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사건과 의미 없는 사건을 구분하여 전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즉 역사는 ‘의미있는'(meaningful) 과거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과거의 의미있는 사건들을 서술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역사 기록에는 반드시 평가가 뒤따라야만 한다. 이 말은 역사의 사료가 해석된 재구성(interpreted reconstruction)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이와 같이 해석과 평가를 거친 후에야 역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1. 역사의 객관성

역사가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발생 원인과 사건의 전개 과정과 거기서 초래된 여러 문제들을 분석, 정리, 해석, 적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가는 한 사건에 대한 모든 사료(史料)들을 다 다룰 수는 없으며,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여 사료를 체계적으로 고찰한 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취사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역사가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해석이 동반되지 않는 사건의 나열식 기록은 역사의 가치가 없으므로 역사가의 모든 기록에는 해석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사한 자료를 보고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들의 역사비평이나 적용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 속에서 객관적이고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지만 역사가 자신의 체험과 분리시켜서 그 사건들을 순수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질’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살아 계신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상반된 전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인간을 한갓 미생물에서 진화된 고등동물 정도로 이해하지만 기독교인들은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피조물이요 모든 피조물들 보다 고귀한 존재로 본다.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데 있어서도 전제가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기독교인은 매우 상반된 관점을 피력할 것이다.

역사가가 순수한 객관을 유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전제'(presupposition), 즉 주관만을 가지고 역사를 기록해도 되는가? 아니다. 역사가의 관점이나 목적이 사료의 선택 과정이라든가 그것의 평가 서술에 있어 다소 편향성을 가질 수는 있으나 부단히 자료를 검증하고 공정하게 다루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주관으로 흐를 수 있는 경향을 최대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깨끗한 양심과 공평성이야말로 역사가의 기본 덕목이며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객관성을 보족(補足)할 수 있는 중요한 ‘제어장치’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의 객관성은 그 역사 기록을 읽는 역사학도들이나 일반인에 의해서도 평가된다. 어떤 역사가의 자료선택이나 평가 서술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면 역사를 읽는 독자들에 의해 그 역사 서술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지금까지 언급한 ‘역사를 보는 방법론’은 매우 다양했다. 이제 그러한 여러 종류의 사관들을 고찰함으로서 역사 서술에 대한 일반론적 이해와 아울러 기독교와 역사와의 관계에 대한 선이해(先理解)를 돕도록 하겠다.

1) 순환사관(巡環史觀)

이 사관은 역사상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사관이다. 고대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방민족들과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관이 바로 이 순환사관이었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투스(Herodotus)나 그를 승계한 투키디데스(Thukydides)조차도 역사는 순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 기록의 목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단순히 기록함으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순환사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사관이었는데, 그 원인은 이 관점이 1년 중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주기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시간을 생각할 때 ‘거대한 수레바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과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시간은 처음과 끝이 없이 그저 4 계절이 돌듯이 무한히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 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시작도 끝도 없고 단지 무의미하게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순환사관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20세기의 순환론적 역사학자들에게서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순환론으로 오스왈드 쉬팽글러(O.Spengler 1880-1936)와 아놀드 토인비(A. Toynbee 1889-1975)를 꼽을 수 있다. 혹자들은 이들의 사관을 ‘비극적 문명사관'(悲劇的 文明史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관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토인비에 으르러 그 절정을 보는 금세기 초의 대표적 사관이었다. 1918년부터 1922년까지에 걸쳐 유명한「서구의 몰락」을 펴낸 쉬팽글러는 문명을 생물체에 비유한다. 그에 의하면 문명들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인간과 똑같은 생명주기인 탄생, 성숙, 노화, 사망의 단계를 순환적으로 반복한다. 그런데 서구문명은 이미 성장을 마친 단계에 있으므로 이제는 몰락의 단계로 접어들고, 결국 서구문명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서구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것을 가리켜 ‘유기체적 순환설’ 또는 ‘숙명적 결정론’이라고 말하는 역사가들도 있지만 분명히 이것은 고대의 순환사관의 반복적 형태이다. 쉬팽글러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바로 토인비이다. 그는 1920년에 쉬팽글러의 저서를 읽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자신의 불후의 명작인 「역사의 연구」저술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그는 비교방법론을 통해 역사의 성장과 쇠퇴의 법칙성을 발견하려 하였다. 그래서 21개의 문명과 종교들을 연구한 후 문명은 인간의 창조적 도전(challenge)과 그에 대한 응전(또는 반응, response)을 원리로 하여 발전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그는 문명이 창조적 소수의 지도 아래 성장해 가는데, 그들이 단지 지배만을 목적으로 하여 새로운 도전과 창조력을 수용하지 못하므로 문명이 점차 파괴되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순환사관이 어느 만큼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질문해 보아야 한다. 순환이론은 제한된 영역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의로운 통치자의 시대에는 바른 신앙과 그에 따른 평화와 번영이 그리고 불의한 왕의 시대에는 우상 숭배와 군사적, 정치적 실패가 따라오는 순환주기가 그것이다. 또한 세계교회사 속에서 부흥운동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교회가 급성장하게 되며 그 열기가 식어지면 다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역사도 이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록 그렇게 주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숙명적이고 필연적인 역사성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예측치 못한 ‘비약’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현대의 문명 현상인 인구폭발, 우주여행, 핵전쟁의 위기, 환경오염의 확대, 자원의 고갈 등은 지난 세대의 수레바퀴가 다시 굴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한다.

 

2) 계몽주의적 진보사관(進步史觀)

르네상스는 그때까지의 신(神) 중심적 사고체계를 인간 중심적인 사고체계로 전환시켰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 사상에 뿌리박고 있던 사상적 기조(基調)는 바로 역사의 진보 사상이다. 이 시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원죄로 인해 타락하였다는 기독교의 원죄관(原罪觀)이 무시되었고, 인간의 죄악이란 단순히 도덕적 결함이나 불완전 또는 지체(遲滯) 등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본주의적 사상이 팽배하였다. 또한 인간의 불완전은 인간 이상의 능력, 도덕과 신념, 종교의 힘 등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만연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완전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면서 진보적 교육을 받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러한 사상에 근거하여 인류의 역사는 계속 전진하는 것이며 진보를 거듭하여 발전한 다고 보았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은 모두 인간 역사를 낙관적(樂觀的)으로 보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독일의 계몽시인 레싱(Lessing)과 사상가였던 헤르더(Herder), 루소(Rousseau) 그리고 페트라르크(Petrarch)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페트라르크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데, 기존의 역사관을 변화시켜 새로운 역사관을 창출해 내었다. 즉 하나님의 신적 개입과 섭리,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계획 성취라는 중요한 역사적 전제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배제된 ‘세속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까지의 교회의 전형적인 역사관을 정면으로 배척한 일종의 반란이었고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진보사관을 정립시킨 중요한 토대가 된 것이다.

이 진보사관을 부추긴 중요한 근대적 사조들로는 첫째,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어거스트 콩트(A.Comte)의 실증주의(實證主義)가 있다. 콩트는 문화에는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그리고 실증적 단계의 3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류 역사의 최종 상태가 종교나 철학이 아닌 과학의 지배 시대라는 인본주의적 암시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다윈(C.Darwin)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원시적인 생물로부터 진화한 존재로서 부단한 상승 운동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상태로 발전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역사를 본다면 부단한 상승과 발전, 진보만이 있을 뿐 역사를 주장하는 어떤 절대자의 존재도 생각할 수 없다. 셋째, 마르크스에 의하면 세계는 계급이 없고 행복한 사회인 궁극적 공산사회로 부단히 발전하고 진보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사상은 유물사관(唯物史觀)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인본주의적 낙관론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완성됨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진보적 사관은 기독교인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을 기점으로 진보적 역사관은 중요한 전환점에 도달한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류에 대한 희망과 확신에 가득 찼던 낙관론자들은 비관론으로 급선회했던 것이다. 인간의 우수한 능력이 인간을 부단히 발전시키고 과학의 힘으로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으며, 또한 불가능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인간들의 탐욕과 야수성이 낳은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간들은 인간 이하의 인간존재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러한 죄악된 본성이 모든 인간 속에 잠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정신사관(精神史觀)

이 사관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의 철학에서 기인한다. 헤겔은 세계사란 인간의 자유의식이 무한히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실현되는 ‘세계이성’ 또는 ‘세계정신(Welt-Geist)의 구현’이라고 보았다. 헤겔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 변증법적 논리를 역사의 발전개념에 응용한다. 즉 세계사에 있어 세계이성(또는 절대이성)은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과정은 정(正), 반(反), 합(合)의 과정을 통해 최고의 차원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이 절대이성은 지구상에서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전하며 그 양상이 다양하다고 한다. 그는 세계를 동양 세계와 그리스 로마 세계, 게르만 세계로 구분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발전을 계속한다고 하였다.

그의 세계사 이해는 다소 게르만 민족 중심적인 해석의 경향이 있다. 그에 의하면 동양 세계는 제주의적(專制主義的) 정치체제하에서 군주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게 되므로 세계사 발전의 초보단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세계는 노예제를 기초로 하여 도시국가의 형태를 유지하였으므로 시민들을 중심으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유를 누렸다. 이후에 게르만 세계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유의 의미를 알게 되어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자의적(姿意的)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4) 유물사관(唯物史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오늘날의 공산주의 체제를 살펴볼 때 마르크스의 본래적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순수한 마르크스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오늘날 마르크스가 다시 살아난다면 자신의 사상에 그렇게도 많은 첨삭(添削)이 가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서 발전한 수많은 이론과 체제들(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유로커뮤니즘, 주체사상 등)은 모두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역사관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물사관인데, 특히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사관은 헤겔의 정신사관을 역(逆)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헤겔이 역사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정신’이라고 한 데 비해 마르크스는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물질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제적 생산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의 최초 인간사회를 ‘원시공산사회’라고 규정한다. 그 다음 단계는 농노(農奴)를 기반으로 하는 ‘노예 사회’ 그리고 그것이 중세의 ‘봉건적 노예사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오늘날의 사회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 이후에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고, 최종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용하는 힘을 마르크스는 ‘생산력’ 또는 ‘생산수단’이라고 언급하였다. 바로 이 생산력이 생산양식과 사회의 제반 관계들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각 사회는 그 사회 자체가 내포한 체제적 모순 때문에 생산력의 발전을 저지시키게 되고, 그 세력이 커질 때 반(反)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혁명의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하였다. 이 혁명이야말로 한 사회가 한 단계 높은 사회로 비약(Aufheben)하는 수단이며, 이 비약을 통하여 사회는 발전한다고 보았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세계사는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자본가 계급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노동자 계급간의 투쟁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유물사관은 인간 개개인의 의욕, 선택, 책임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유물사관이 결정론적 사상체계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유물사관은 그 본질적 형식에 있어 기독교와는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무신론적 역사관이다. ‘물질이 곧 실재(實在)’라는 주장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Ⅱ. 기독교와 역사와의 관계

  1.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전제

역사가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기독교 사가들은 역사를 바라볼 때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점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적 관점만이 바른 역사관이라고 검증없는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문제는 역사에 대한 어떤 관점이 어느 만큼의 타당성을 가지는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사관(史觀)의 ‘검증장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나치당원들이 가졌던 게르만 국수주의적 역사관이 왜 잘못되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역사관 이전에 그들이 가진 신념이나 가치체계가 이미 잘못되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이라고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그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타당성 여부의 확인을 통해서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역사관도 이러한 검증을 거쳐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타당하려면 우선 기독교 그 자체의 타당성 여부를 확인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고찰하여 그 정당성을 입증하면 기독교적 사관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신화(神話)나 인간이 만들어 낸 작위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다만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온 세상의 구원주라는 사실에 대한 신앙에 기초하는 참된 종교이다. 기독교에서 섬기는 하나님은 참된 주권적 존재로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섭리하고 활동하고 계신다. 성경은 분명하게 역사의 시작과 끝이 있음을 말하는데, 그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종말에 심판으로 역사의 막을 내릴 것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자체의 정당성은 지금까지 2천 년이 가깝도록 유지되어 온 기독교 역사 자체나 현재도 수십 억에 달하는 기독교 신자의 숫자가 웅변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적 역사관은 이러한 기독교 자체에 대한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즉 기독교가 타당성을 인정받는 한 기독교적 역사관의 타당성은 유지될 것이다.

 

  1. 이원론적 역사인식 재고(再考)

초대 교회의 신학을 정리하고 중세의 신학으로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St.Augustine)의 역사관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는 시간(time)과 영원(eternity)이 만나난 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역사관에 근거하여 그의 주저(主著) 「신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 하나님 나라와 세속의 나라가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역사(일반사)는 단순히 교화를 통한 신적 목적이 실현되는 역동적 역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들 각 개인이 그 역사 과정의 중심이고 재료라고 보았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개인의 선교열정을 자극하여 기독교와 서방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어거스틴의 역사관이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말하는 이원론(dualism)은 아니지만 이원론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원론적 성향’이란 교회와 세상을 분리적으로 이해하는 사고 구조를 말한다.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르네상스기에 단테(Dante)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단테는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분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세속사와 교회사는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이다. 이 세상의 나라는 인간의 인위적 사고와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설정된 하나님의 목적 중 일부라는 인식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이 인본주의적이라는 점은 고려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역사관은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적 개입과 섭리의 관점이 포기되고 하나님이 배제된 세속 역사관이 주된 역사관으로 뿌리 내리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서구사회의 세속화의 주된 기폭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본주의적 역사관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어거스틴의 역사관을 중세에 충실하게 계승한 베데(Bede)의 역사관, 즉 당시 중세교회의 역사관에 대한 반동(reaction)이 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본주의자들의 반동은 어거스틴의 역사관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 오해가 바로 이원론적인 것에 있다.

교회와 세상, 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언제나 신학에서 핫이슈가 되어 왔지만 양자가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고 보는 이원론적 관점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적 관점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 관계는 역사 속에서 흔히 기독교적인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원론을 이교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성경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는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이원론적 성향은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이 역사관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세속사와 교회사를 예리하게 구분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교회사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전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세속사는 교회사만큼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인간의 작위적(作爲的) 행동으로 역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론적 성향이야말로 기독교인이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요소이다. 이원론적 역사관은 기독교적 역사관이 아니다.

 

  1. 역사를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통합된 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사와 세속사의 구분은 엄밀하게 말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첫째 공간적으로 온 우주가 그의 섭리의 대상이고, 둘째 시간적으로도 역사의 시작과 끝이 모두 그의 섭리의 범위이다. 이 커다란 역사 구조에 교회사와 세속사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를 찾지 못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통합된 눈’으로 역사 그 자체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통합된 눈은 기독교 사가(史家)로 하여금 한 사건에 대해 이전보다 풍부한 사료(史料)를 검증하고 인간관계를 고찰하게 함으로써 더욱 풍성한 연구를 하게 만든다. 이 연구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다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흔히 기독교 사가들은 일반역사가 왜곡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일반 사가들은 기독교 역사란 역사에 있어 재고할 만한 일말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혹평하며 서로 격렬히 논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 사가들이 보다 폭넓은 역사연구를 한다면 역사의 내면 속에 개입된 하나님의 손길을 보다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독교인이 역사를 통합적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그가 세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점을 고찰할 때 보다 자명해진다. 성경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 자체가 이미 세속사의 흐름과 얽혀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좋으나 싫으나 오늘도 세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세속사를 사는 과정이 곧 교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와 역사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Ⅲ. 교회사의 범위

교회사의 범위는 교회사가 교회의 역사라는 간단한 정의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교회의 기원을 이해하는 시각에 따라 교회사의 범위는 조금씩 다르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사의 범위는 다음과 같은 2가지의 형태로 나뉘어진다.

  1. 좁은 의미의 교회사

협의(狹義)의 교회사는 교회의 기원을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과 죽음, 부활 사건과 연관한 범위 규정이다. 즉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와 같은 성령의 역사로 진행된 초대교회에서부터 교회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범위 규정이야말로 기존의 세계 교회사 책들이 다루어 온 일반적인 것이다. 광의(廣義)의 교회사는 교회의 기원을 초대교회 이전으로 소급하여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견해가 일치된 한 가지 이론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혹자는 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아담을 제사장으로 하는 에덴 동산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또한 광야의 성막 시대를 교회의 기원으로 보거나 성전이 건축되어 중앙집중적 제의 공동체가 형성된 시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울러 바벨론 유수 이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당 제도를 신약교회의 이전적 형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이 견해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신약 이전 시대까지 소급함으로 신약 시대부터 시작되는 교회사(협의의 교회사)가 구약 시대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본서에서는 후자의 견해를 따라 교회사의 시작을 초대교회사 이전의 제의공동체(祭儀共同體)가 형성되던 시기인 성막, 성전, 회당 시대부터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범위 설정은 교회사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으며, 또한 교회사가 세속사와 격리된 역사가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Ⅳ. 교회사 인식의 변환

  1. 보다 폭넓은 인식의 한 예(例)

교회사에 있어 주후313년은 매우 중요한 해로 인식되고 있다. 이 해는 바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황제가 밀라노(Milan)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해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후 기독교에 유리한 여러 법령들을 인준하였으며, 325년에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하기도 한 행동이 과연 그의 신앙심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또한 그의 기독교 공인이 교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연구되지 않고 간과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의 논의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가 과연 회심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태이다. 또한 기독교가 공인됨으로 기독교에 자유가 주어진 측면이 강조되어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들에게 자유를 준 ‘평화의 사도’로 영웅시되어서도 곤란하다. 그가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신비체험을 한 것으로 인해 회심하게 되었다는 한낱 전설에 주안점을 두는 것보다는, 세속사와 연결하여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은 당시 그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행동이라는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도 이 사건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공인 후 기독교의 상황은 집단적인 회심이나 억지로 된 개종이 많았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물론 당시의 개종자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교적 환경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던 사람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정신구조와 그들의 사고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 삶에 대한 해석의 틀이 한순간에 없어질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는 이교신앙과 일종의 타협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가 어떤 지역의 수호신에게 세례를 주고 그 수호신을 기독교 성인의 반열에 오려줌으로써 이교 신앙인들의 신앙을 흡수하는 방법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혼합주의적(syncretic) 양상이 교회의 ‘신성화'(神聖化)를 초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J.Ellul). 이 기독교 공인 이후로 교회는 의전적(儀典的)인 요소를 중시하는 형식주의적 교회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콘스탄티누스로 하여금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셨을 때, 그 이후의 교회사에 대한 계획도 아울러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 신성화가 극한 상황을 치달은 중세에 ‘비신성화’를 내건 종교개혁으로 교회를 구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사의 한 사건에 대해서도 기존의 교회편향적이고 단편적인 입장만이 아닌 다각적 관점의 접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1. 교회사 연구의 기본적 전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료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폭넓은 연구 태도가 필요하더라도 모든 교회사의 연구는 한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이 전제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철학에서 말하는 제1원리이거나 초월적 추상개념이 아닌 시공 속에서 지금도 역사하시며 인격적이요 주권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여야 한다. 모든 역사는 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주장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존재 때문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의미가 있으며(롬8:28,30),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롬11:36).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존재로 우주의 왕인 동시에(창1:27,28) 죄로 인해 만물보다 부패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렘17:9) 인식해야 한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은 이 인간관이 잘못되어 있었기에 여러 가지 이념이나 사상들을 하나님과 대치시켜 놓는 실수를 저질렀다. 인간의 존재를 바로 인식해야만 겸손한 마음으로 지나간 기독교의 역사를 바르게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된다.

 

  1. 바람직한 교회사관(역사관)의 정립

첫째, 교회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기독교를 이해하는 주춧돌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교회사는 필연적으로 교리에 대한 이해의 틀이 변천된 역사를 다룬다. 이것은 교회사 속에서 정통과 비정통이 무엇인지를 밝혀 줌으로 올바른 기독교를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사를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아야 하는 기독교사가는 일반역사가들이 외면하고 있는 성령의 사역을 중요시해야 한다. 성령은 세계 교회사 속에서 직접적으로 역사하기도 하며, 더욱 흔하게는 2차적인 수단들을 통하여 계속 활동하셨다. 바람직한 교회사관은 이렇게 역사의 배면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간과하지 않고 교회사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셋째, 역사 해석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역사가는 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절대적이거나 권위적인 도덕판단을 내리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일에 대하여 사랑과 동정으로 공정하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역사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실수와 어리석음에 대해 비난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바로 그 인물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 속에서 최종적인 완성이란 불가능하며, 그것을 가장할 때는 새로운 악이 tod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R.Niebuhr).

 

Ⅴ. 교회사관의 실례(實例)

이제 지금까지 서술한 일반적인 교회사관에 관한 진술을 염두에 두고 교회사에 대한 최근세사의 몇몇 학자들의 특정적인 사관들과 한국 교회사에 대한 중요한 사관들을 간략히 고찰해 보도록 하자.

  1. 라루렛의 선교사관(宣敎史觀)

라투렛(K.S.Latourette) 교수는 예일 대학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가르쳤던 저명한 학자로 기독교 역사관의 중심 요소를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랑의 동기(the motive of love),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교제관계, 일견적 통합성(the universality of outlook) 등으로 들고 있다. 이것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선교'(mission)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역사에 일정한 발전의 형태들(patterns)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요소는 오히려 변화 또는 변천(flux)한다고 보았다. 즉 인류의 어떤 문명이나 제도들도 영원히 불변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으며,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 그러나 그 변천하는 역사의 주인은 늘 하나님이었다. 기독교적인 역사관이 다른 일반적 역사관과 다른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이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보기 때문에 의미 없이 순환하는 역사관을 주장하지 않는다. 역사는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세계의 역사나 개인의 역사 속에 개입하신다. 그렇다고 하여 기독교 역사가는 인간의 사회 구조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사회 구조가 역사 구성의 주류를 이루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라투렛의 기독교 역사관은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역사는 선교의 과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1.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적 역사관

니버(Reinhold Niebuhr) 교수는 성경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작품들을 섭렵함으로써 풍부한 역사적 사고를 소유한 미국의 역사학자이다. 그의 역사이해의 중심에는 늘 예수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다. 즉 기독교 역사는 예수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역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종말을 맞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인간의 역사적 실존이 성취됨으로 예수는 역사의 끝이 되었다. 또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 도래했다는 것은 예수로 인해 인류 역사 속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버에게 있어 이 새로운 시대는 ‘회개'(repentance)를 통해 시작되므로 그에게 있어 역사관은 삶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existential) 문제와 직결된다. 이 말은 인간이 역사적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인간은 늘 오류에 빠지므로 완벽한 역사 이해와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역사의 의미는 역사 자체 내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 그 자체를 넘어서며 인간의 유한성과 죄악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용서를 이해하는 믿음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니버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은 역사 의식을 낳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니버의 역사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전체 계시의 장점이며, 또한 인간 역사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사관의 단점은 역사적 관점에서 신학을 이해하기보다는 신학적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 했다는 점일 것이다.

 

  1. 크리스토퍼 도오슨의 카톨릭적 역사관

도오슨(Christopher Dawson)은 로마 카톨릭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역사가로서 서구사회의 형성과 발전을 해석하는 데 독특한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국가 안에서 이질적인 이데올로기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결속되었던 공동체로서의 서구사회는 붕괴되었고, 그 사회에 오래 전부터 정신적 활력소 역할을 해오던 기독교가 무력하게 된 반면 공산주의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서구의 현실이라고 갈파하였다. 그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구사회가 정치 경제적 이해를 떠나서 정신적으로 재결속할 수 있도록 공동적 요소를 재발견하고, 그 원리에 입각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원리를 종교, 즉 기독교라고 주장한다. 종교가 사회와 개인의 정신적 근저에 늘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이 그의 저서들에 한결같이 흐르는 사상이다.

성육신은 그에게 있어서도 니버와 마찬가지로 성경계시의 중심 사건이자 역사의 중심(midpoint)이었다. 도오슨은 기독교 역사란 단순히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다는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역사 속에 깊숙이 개입하셨음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성육신을 중심하여 서술되는 기독교 역사가 지극히 당연했던 것이다.

 

  1.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적 역사관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에 의해 대표되는 해방신학에서의 역사관 또한 현대 기독교 역사관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해방신학에서는 교회사와 세속사가 병행하거나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견해를 수궁하지 않는다. 세계의 역사는 오직 하나라고 주장한다. 역사의 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단 하나의 인간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인간 실존의 전영역에 걸쳐 있으며, 그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구속사야말로 인간 역사의 핵심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러한 측면으로 통일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방신학적 역사관은 오직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는'(Christo-finalized) 역사가 있을 따름인 배타적 역사관이다. 이와 같은 편향적 역사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해방신학은 인간의 세속사에 깊이 관여하는 실천운동을 전개하는 모순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1.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의 다양한 역사관

한국교회사는 이제 막 100여 년의 역사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역사에 대한 연구가 세계교회사에 비하면 일천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사관이 시도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선교사관(宣敎史觀)

이 사관은 백낙준 박사가 「한국개신교사, 1832-1910」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를 통해 제시한 것으로 라투렛 교수의 견해에 충실한 역사관이다. 한국 교회사의 모든 부분을 이 선교사관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특히 선교 초기의 역사 서술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한 사관이라고 생각된다.

2) 경제중심사관

이 사관은 전성천 박사의 예일대학 박사학위 논문인〈Schism and Unity in the Protestant Churches of Korea〉(1955)에서 경제적인 요소가 신학적인 요소와 더불어 한국 교회 분열의 원인이라고 가정하고 전개하는 사관이다.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는 어려워도 일리있는 사관이라고 평가된다.

3) 민족교회사관

이 사관은 민경배 교수를 중심한 사관이다. 민족교회사관은 교회사를 선교국 교회의 연장으로 보는 선교사관을 반대하고 한국 교회의 주체성과 독립성, 특수성을 강조한다. 특히 공동체적인 민족개념과 공동체적인 교회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사관은 선교지의 토양이 중시되어야 하고 민족과 교회의 관계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당연한 사관이지만 한국교회사를 기독교라는 보편성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절하시키고, 전세계적 교회의 동일의식을 약화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4) 민중교회사관

이 사관은 민중신학이 득세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자연히 부각된 교회사관으로 기독교 장로회의 사관을 대표한다. 민중사관은 한국의 역사가 민중의 투쟁운동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본다. 그리하여 현대 이전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각종 폭동과 반란도 모두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메시아적 희망’과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관은 1960년대의 한국사회의 상황 속에서 생겨난 토착화 과정의 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직 완전한 사관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므로 평가를 유보하여야 할 것이다.

 

Ⅵ. 교회사 연구의 의의와 목적

가장 넓은 의미의 교회사는 창조로부터 현재까지의 인류의 역사라는 사실을 이미 밝혔다. 특히 그중에서 좁은 의미의 교회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든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밝혀 주는 역사이다. ‘History’를 흔히 ‘His story'(그분이 섭리하신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하거니와 교회사는 그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큰 뜻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역사이다.

또한 교회사는 왓킨(H.M.Gwatkin)이 증거하는 대로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문명적역사의 영적인 측면’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교회사가 기독교인 공동체의 역사이며, 또한 교회사의 범위가 교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는가를 고찰하는 포괄적인 것이라는 뜻도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인 기독교 공동체에 역사하신 섭리의 발자취가 바로 교회사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사를 연구하는 것은 어떤 의의를 가지며 교회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이 의의와 목적은 결국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교회사의 연구는 기독교인들에게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정체서(identity)을 발견하게 한다. 과거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현재를 바르게 관조(觀照)할 수는 없으며 현재적 안목이 부족한 자가 미래를 내다볼 혜안(慧眼)을 가질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된다. “현재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의 열매이며, 아울러 미래 역사의 맹아(萌芽)이다.” 과거의 교회사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공동체를 향하여 베푸신 위로와 격려와 질타와 경계가 가득 차 있다. 또한 교회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약속과 그 신실한 성취의 열매가 가득 찬 보물창고이다. 기독교인들이야말로 교회사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보물창고’를 여는 기쁨을 만끽하는 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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