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의 존재(Unterwegssein)
-길위의 존재-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all this,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but I press on to take hold of that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도상의 존재’(Unterwegssein), 곧 길 위에 있는 존재라 불렀습니다. 인간은 늘 미완성적이며,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미 죽음을 향한 여정에 들어선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 여정으로만 인간을 정의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단순히 길 위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붙들린 자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고백, “붙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빌 3:12)는 바로 이러한 인간 실존에 관한 신학적 진실을 드러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1. ‘붙잡힌 자’
바울은 자신을 무엇보다도 붙잡힌 자로 규정합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기치 않게 빛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께 붙잡혔습니다(행 9:3–6). 이 사건은 그의 자기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전까지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고 확신했으나, 실상은 자신이 붙잡힌 존재였음을 깨달았던 것입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시작은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으셨다.”(『고백록』) 이 붙잡힘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거이며, 도상적 존재로서의 출발점입니다.
2. ‘붙잡으려는 자’
그러나 붙잡힘은 곧바로 안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바울은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고백한다. 이미 붙잡힌 자가 다시 붙잡으려 한다는 역설 속에 신앙의 역동이 있습니다. 은혜는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는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바울은 과거 교회를 ‘박해(dioko: 빌 3:6)’하던 에너지를 이제는 그리스도를 ‘추구(dioko: 빌 3:12)’하는 열정으로 전환했습니다(동일한 동사). 은혜는 인간의 열정과 에너지를 무효화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재구성핮니다. 따라서 인간은 은혜에 붙잡힌 동시에 그 은혜의 목표를 붙들고 달려가는 도상의 존재인 것입니다.
3. ‘이미와 아직’
바울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을 완성된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서 달려가는 존재로 자신을 이해했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나, 그 완성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긴장 속에서 인간은 늘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완성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미완성의 자각은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성숙은 완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미완성을 자각하는 겸허함에 있습니다.
4. 하나님과 자기 인식
스스로 완벽을 자랑하던 바울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자기 미완성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자기의 미완성을 자각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인식과 자기 인식은 서로를 비추며, 그 상호 조명 속에서 인간은 길도상의 존재로 형성됩니다.
오늘 우리는 완벽주의와 무기력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은 이 양극단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 붙잡힌 자입니다. 그러므로 실패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게으른 안주가 아니라, 은혜에 근거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완결된 자화상이 아니라, 여정 속에서 하늘의 빛을 반사하는 길 도상의 존재입니다. 붙잡힌 자로서, 다시 붙잡으려 달려가는 자,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은혜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 이것이 바울이 제시한 참된 인간상입니다.
“길 위의 존재란 이미 완성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이다.”(To be on the way is not to have already arrived, but to walk the lifelong journey of being shaped into the likeness of Christ) Rev. JC Kim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으며,
아직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붙잡힌 자답게
다시 주님을 붙잡으며 달려가게 하소서.
우리 안에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