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m follows function.)리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건축뿐 아니라 예술계 전반, 특별히 산업디자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를 들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사람을 태운 채로 안정적인 고속주행을 수행하는 기계입니다. 따라서 흔들림을 줄이고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공기저항을 최소화히는 유선형의 몸체로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형태와 기능 사이에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난해한 모양의 자동차를 만들지 말리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동치는 심미성이 떨어질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또한 그 “기능”을 반영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직 너희의 행위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되라(빌 1:27)”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행색을 하고 살아갑니다. 말투, 매너 등에 있어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그 자체로는 악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하는 악의 “형태”가 된다면 자제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로 부름을 받았으니 그 자유를 육신을 위한 계기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갈 5:13).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고 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땅의 역사를 신비하게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25절에서 다윗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받거나, 그 후손이 걸식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시편은 다윗이 인생을 많이 산 후에, 삶을 회상하며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신뢰해야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교훈입니다.
또한 이 시편은 각 절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등장하는 알파벳(답관체) 시편입니다. 알파벳 시편은 전체 8편이 있는데, 9-10편, 25편, 34편에 이은 4번째입니다. 5번째는 111편입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20절은 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즉 악한 사람에게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은 다윗도 그들 때문에 불평할 일이 많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평하다’는 ‘속에서 불이 나다’는 의미입니다. 즉 ‘속에서 천불을 내지 말라’는 의미이자 ‘화병(火病)이 들지 말라’입니다. 또한 ‘시기’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것을 부러워하는 감정’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향해 불평과 시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은 ‘풀’과 같이 때문입니다.
풀들은 다른 화초보다 훨씬 빨리 자라납니다. 하지만 그래서 빨리 뽑히고 잘립니다. 또한 아무리 파랗고, 아무리 신선하게 보이는 상추나 배추가 며칠만 밖에 두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악인의 끝이 그러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3절부터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개의 명령형 동사가 나옵니다. ‘의뢰하라’, ‘행하라’, ‘머물라’, ‘삼으라’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리에게 가장 먼저 권면하는 말은 ‘여호와를 의뢰하라’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길어질수록 쉽고도 어려운 것이 하나님을 의뢰(신뢰)하는 것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다윗은 ‘선을 행하라’고 권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바르게 사는 사람,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을 알고 계시고, 그들의 모든 것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중심으로 믿는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땅에 머물고, 성실을 그의 먹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매일 신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속적 가치관이나 자기의 욕망을 기뻐하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또 그 기쁨이 자신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5-6절에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기억해 주시고, 자신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면 빛과 같이 우리를 나타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먼저 우리를 나타내 주시면 맡기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서 11절과 3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고,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자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약속의 땅이 가나안을 의미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땅은‘영원한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려주심은 진실 중의 진실입니다.
21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책임져 주시는 지를 말씀하십니다. 23-2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 두 구절은 인생의 방황속에 있는 인생들에게 참으로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의 결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책임져 주심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25-2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다윗에게는 쫓겨다니며 걸식할 여러 경우들이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 먹을 것으로 인해서 고통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더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행하지 않으셨습니까? 삶에 순간순간에는 부족한 것도 있고,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고백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 폐부 깊은 곳에서 동의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39-40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견고함이 없음’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는 그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삶의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삶의 근거를 두는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마음 깊은 곳에 불안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의인들은 환난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요새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뢰하는 하나님이 영원한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 3절에서 의로운 사람,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견고한 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매이는 것보다 더 복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뒤에 계속 주님을 믿을, 다음 세대들도 동일하게 가장 복 있게 사는 것은 그들의 인생의 소망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성령께서 매인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셔서 우리를 우리의 가정과 일터, 삶의 자리에 심으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평생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성령께 매인바 된 자유인으로 살아가시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삶의 무게와 신앙의 방황으로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도 버리시지도 않으시고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잊지 않게하시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으로 삼게 하시고 이제는 오뚜기처럼 넘어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