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안내
Ministry & Diakonia

예배와 말씀
Worship & Kerygma

교육과 훈련
Didache & Training

다음세대&다리사역
Youth/EM

교제와 선교
Koinonia & Diaspora

희망의 씨앗 Blog
Rev. Chang's
Seed of Hope

다음세대&다리사역
Next Generation & Bridge Ministry
꿈나무사역
Infant & Sunday School
유스그룹
Youth Group
대학청년부
Collge & Young Adult
2세 뿌리교육
Korean School
다리사역
Bridge Ministry
성경백과
Bible Encyclopedia
       
목회와 신학 Ministry and Theology

떨림으로 세워진 진정한 설교자

떨림으로 세워진 진정한 설교자

우리는 지금 설교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튜브를 열면 세계 최고의 설교자들이 금방 내 손 안에 들어온다. 설교를 생산하는 도구들도 인류 역사상 가장 풍성한 시대이다. AI는 원하는 본문에 대한 주석과 깔끔한 예화와 대지들을 몇 초 안에 생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시대의 강단은 이토록 조용한가? 강단에서 나오는 소리의 양은 오히려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그 소리들이 사람의 영혼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 본질적인 능력이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좀 이상한 고백을 한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이 그들에게 처음 갔을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했다(고전 2:1).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학적 선언이다. 바울은 수사학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살았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상업 도시이자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 도시의 광장에서는 소피스트들이 청중을 매료시키는 웅변으로 명성과 돈을 얻었다. 바울이 그 도시에 들어갔을 때, 회중은 당연히 그에게도 그런 퍼포먼스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기대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왜인가?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

설교의 목적은 설교자의 능력을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통과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통로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통로는 투명해야 한다. 여기에 현대 설교의 깊은 위기가 있다. 우리는 설교를 일종의 퍼포먼스 예술로 훈련 받았다. 더 좋은 도입부, 더 감동적인 예화, 더 기억에 남는 클라이맥스. 이것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목적이 될 때, 설교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강단의 권위는 소리 없이 무너진다.

인공지능도 이제 설교문을 쓴다. 그것도 꽤 잘 쓴다. 본문의 원어를 분석하고, 교부들의 주석을 인용하고, 회중의 삶에 적용되는 예화를 배열하고, 논리적으로 완결된 결론으로 이끈다. 어떤 면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설교문은 평균적인 설교자의 그것보다 구조적으로 더 탄탄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질문을 품고 있다. 만약 기계가 우리의 설교를 대신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 강단에 무엇을 가지고 올라가고 있었단 말인가?

화려한 수사는 필요한 기술이다. 기술은 학습되고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강단에 가져오는 것 중에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존재의 무게’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찬양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무너졌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 6:5). 이 무너짐이 이사야를 선지자로 만들었다. 그 이전의 이사야와 그 이후의 이사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의 자기 붕괴를 경험한 자만이 그 영광을 선포할 수 있다.

존 스토트는 설교자를 일컬어 “두 세계 사이에 선 자”라고 했다. 한쪽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그 둘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가 설교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그 두 세계 사이에 선 설교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대가로 지불하는 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말씀이 자신의 내면에서 먼저 불처럼 타오르기까지 강단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유진 피터슨은 목회 사역을 “영적 방향 제시”(spiritual direction)라고 불렀다. 그것은 사람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그 안내자가 자신이 먼저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그의 안내는 지도를 읽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직접 그 길을 걸어본 자만이 어디서 발이 미끄러지는지, 어디서 숨이 막히는지, 어느 굽이에서 갑자기 시야가 열리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설교자는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의 길을 먼저 걸은 자여야 한다. 그 걸음의 흔적이 설교 안에 살아 있을 때, 회중은 느낀다. 설명이 아니라 증언을 듣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많은 이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더 영향력 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중을 모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더 기억에 남는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들은 나쁘지 않지만, 그러나 이 질문들은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 우리가 진정으로 직면해야 하는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내 존재가 먼저 이 말씀 앞에서 부서졌는가?”

그런 의미에서, 설교 준비의 가장 깊은 목적은 좋은 설교문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 준비의 가장 깊은 목적은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formed)되는 것이다. 이 구분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사용하는 자’와 ‘말씀에 의해 형성되는 자’는 강단에서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전자는 도구를 다루는 숙련공이고, 후자는 증인이다. 회중은 이 차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안다. 지금 강단에서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설명인지를.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 4:12). 이 말씀이 설교자를 먼저 찔러야 한다. 설교자가 먼저 쪼개져야 한다. 그 쪼개짐을 통과한 자만이 이 검을 들고 강단에 오를 자격이 있다.

오늘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설교자는 더 나은 수사를 위한 도구를 확보한 자가 아니다. 더 많은 청중이나 SNS 팔로워를 거느린 자가 아니다. 더 정교한 미디어 전략을 가진 자가 아니다. 세상이 참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고 언제나 필요로 해왔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정으로 떠는 자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할 때 생기는 경외함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아는 자의 거룩한 전율이다. 그 전율을 아는 자는 강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말재주를 믿지 않는다. 회중의 반응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스스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듣고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이 기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전율하는 설교자의 고백이다.
이것이 진정한 설교자의 영광이다.

By Rev. David Kwon

This entry was posted in 목회와 신학 Ministry and Theology. Bookmark the permalink.

Comments are closed.

No.TitleWriterDateHit
342 현대예배의 역사란? 신간(Prof. Rester Ruth- Duke Univ.) webmaster 2026.04.25 9
341 출간-새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Robert’s Rules of Order Newly Revised, RONR) webmaster 2026.04.23 16
340 떨림으로 세워진 진정한 설교자 webmaster 2026.04.22 18
339 인공지능과 영성 (2) BY SEONGHO CHO. webmaster 2026.04.18 22
338 인공지능과 영성 (1) BY SEONGHO CHO webmaster 2026.04.17 19
337 개척교회 생애와 성장전략 분석사(조지혜박사) webmaster 2026.04.15 21
336 쉼결핍 증후군과 복음 webmaster 2026.04.14 26
335 두 종류의 교회 webmaster 2026.04.13 31
334 정직한 신학이고, 정직한 목회 webmaster 2026.04.10 26
333 교회의 문화형성과 거버넌스(류지성박사) webmaster 2026.04.09 35
< Prev 1 2 3 4 5 6 7 8 9 10 35 ... Next > 
 
    잠들지 않는 사역 Sleepless Ministry Archive | Representative: Rev. Dr. Jaewoong Chang
Phone: (410)200-3859 | Email: mdkumc@gmail.com
COPYRIGHT © 2017 Sleepless Ministry Archive.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Sleepless Ministry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