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한가운데 계실 때”
민수기 5장 3절
민수기 5장 3절은 광야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단지 이동하는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운데 거하시는 백성이었다. 진영 한복판에는 성막이 있었고,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다. 히브리어 “샤칸”(거하다)는 후대 유대 신학에서 “셰키나”, 곧 함께 머무시는 영광“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한 가지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민 5:3)
1.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면, 삶은 거룩의 자리로 바뀐다
민수기 5장은 몸의 부정함(2-4절), 이웃에게 지은 죄(6-10절), 부부 사이의 의심(12-31절)을 차례로 다룬다. 거룩이 예배의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룩은 몸의 질서이고, 관계의 정직이며, 가정의 신뢰이다. 부정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거룩하신 분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삶의 기준은 더 이상 편리함이 아니라 거룩이다.
1.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면, 죄와 상처는 방치되지 않는다
민수기 5장의 정결 규례는 오늘 우리에게 낯설게 들린다. 그러나 그 핵심은 단순한 배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동체가 죄와 부정함과 불신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덮어 두지 말라는 부르심이다. 거룩은 무질서를 방치하지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덮어 주는 따뜻함이지만, 때로는 치유를 위해 드러내는 정직함이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문제가 없는 공동체가 아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다루는 공동체다. 거룩은 흠 없는 사람들의 자랑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회복되는 질서다.
1.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면, 회개는 손과 발을 갖는다
민수기 5장은 이웃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자복하고, 손해를 갚는다.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회개는 방향 전환이고, 배상은 그 방향 전환의 몸이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아직 절반의 회개일 수 있다. 성경적 회개는 손과 발을 가진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은 이웃 앞에서의 책임으로 증명된다.
민수기에서는 부정한 사람이 진영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에게 다가가신다. 나병환자를 만지시고(막 1:41), 혈루증 여인을 받으시며(막 5:34), 죄인들과 식탁을 나누신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친히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히 13:12). 진영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품 안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권한다. “그런즉 우리도 그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3). 이것이 복음의 거룩이다. 거룩은 밀어내는 경계가 아니라 밖으로 나가 회복시키는 임재다.
마무리하며
하나님이 한가운데 계실 때, 우리는 버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기에 아무렇게나 살 수도 없다. 은혜는 우리를 받아 주지만, 방치하지 않는다. 임재는 위로이면서 부르심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 삶의 중심을 주님의 임재로 채워주소서.
숨겨 둔 죄를 정직하게 내어놓게 하시고,
우리의 회개가 손과 발을 갖게 하소서.
진영 밖으로 나가신 예수님을 따라,
상처 입은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