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가정의 달에 대한 묵상
• 왜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신앙으로 전승되지 못할까? –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감사와 사랑의 언어가 많아진다. 그러나 믿음의 가정은 조금 더 깊은 질문 앞에 선다. 왜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신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할까?
이 질문은 자녀 세대만을 향한 물음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관계와 기억, 신앙의 표정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신앙은 말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관계의 통로를 따라 흐른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깨어져 있으면, 바른 말도 복음이 아니라 부담으로 들린다. 사랑 없는 권위는 명령이 되고, 친밀감 없는 신앙 교육은 종교적 잔소리가 되기 쉽다.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부모 자신이 신앙을 강요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때다. “나는 부모 때문에 억지로 신앙을 가졌다. 그러니 너는 네 마음대로 결정해라.” 이 말에는 자녀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부모 자신의 오래된 상처와 주저함도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어느새 아무것도 증언하지 못하는 침묵으로 굳어 버리기도 한다. 자녀의 자유를 지켜 주려던 마음이,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건네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것이다.
더 깊은 문제는 부모의 믿음이 실제로 기쁨과 자유로 보이지 않을 때다. 자녀는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얼굴을 먼저 읽는다. 신앙이 부모를 더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더 따뜻하게 하지 못하고, 더 넉넉하게 하지 못한다면 자녀는 속으로 묻게 된다. “저 믿음이 정말 내게도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두 아이,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마음에 품었던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권위였다.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자녀들이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따라올 수 있기를 바랐다. 다른 하나는 친밀함이었다. 자녀와 내가 사랑과 신뢰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말이 아니라 일상의 삶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돌아보면 권위와 친밀함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친밀함 없는 권위는 무겁고, 권위 없는 친밀함은 쉽게 흐려진다. 좋은 부모 됨은 결국 이 둘 사이의 균형을 평생에 걸쳐 배우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모의 신앙은 자녀의 신앙으로 다시 흘러갈 수 있을까? 빠른 길은 없다. 다만 작은 길은 있다.
먼저는 부모가 복음 안에서 조금 더 기뻐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자녀에게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부모의 삶이 “믿음은 사람을 살게 한다”고 조용히 증언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자녀는 설교를 듣고 자라지 않는다. 부모가 신앙안에서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지를 보면서 자란다.
다음은 자녀를 붙잡되 소유하지 않는 일이다. 자녀에게도 자기만의 삶과 자기만의 신앙의 길이 있다. 부모는 자녀를 대신해 믿어 줄 수 없지만, 함께 기도할 수는 있다. 놓아줌은 포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또 다른 형태의 믿음이다.
그리고 말씀의 작은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다. 하루 한 구절이라도 함께 읽고, 짧게 나누고, 오늘의 삶과 연결해 보는 것.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오래 지속되는 작은 습관 하나가 한 영혼에 더 깊이 남는다.
예수님은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함께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울고,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부르셨다. 가정의 신앙 전승도 결국 그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까. 사랑으로 가까이 있고, 진리로 길을 비추며, 기도로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 신앙은 강요하면 벽이 되지만, 사랑 안에서 살아낼 때 소중한 길이 된다.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자녀들 모두에게,
올 한 해에도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5월, 가정의 달에 김지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