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진실과 사랑이 만나는 자리
시편(Psalms) 85:1-1
이 시대에 참 절실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의와 화평을 동시에 갈망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자주 충돌합니다. 잘못을 철저히 바로잡자고 하면 공동체의 갈등이 극에 달합니다. 이제 그만 덮고 화해하자고 하면 불의를 외면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시편 85편은 전혀 다른 세상을 그립니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 여기서 ‘의’(체데크)는 관계를 바로 세우고,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며, 공동체를 하나님의 질서 위에 다시 세우는 공의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11)
성경의 ‘샬롬’은 단순히 싸움이 없는 갈등 부재의 상태가 아닙니다. 깨어진 관계가 온전해지고 공동체가 제 자리를 찾는 삶의 평안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은 “평강하다, 평강하다”(렘 6:14)라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상처를 덮어두고 약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샬롬이 될 수 없습니다. 진실(에메트)을 직면하면서도 관계가 단절되지 않을 때, 참된 평화는 비로소 싹트는 것입니다
2.
정의라는 이름으로 분노를 쏟아내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체데크’가 아닙니다. 정의는 약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이 보호받고 다시 일어서며, 깨어진 관계와 공동체가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시인은 “정의가 평화를 이겼다”고 선언하지 않습는다. 놀랍게도 그 둘은 서로 입맞춥니다. ‘입맞춤’은 친밀함과 화해의 은유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정의가 평화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평화는 정의가 맺는 열매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이 시편의 가슴 벅찬 환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죄와 악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의를 엄정하게 꾸짖으셨지만, 동시에 상처입고 소외된 이들을 자기 식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간의 폭력에 다시 폭력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 2:14)
십자가는 진실을 희생시켜 얻은 화해가 아닙니다. 사랑이 정의를 포기한 자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헤세드, 진리인 에메트, 의인 체데크, 화평인 샬롬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입맞춘 우주적 사건이었습니다.
교회는 이미 입맞춘 이들이면서, 아직 온전한 입맞춤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진리를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며 예배했습니다(롬 16:16). 시편의 입맞춤은 추상이 아니라 예배의 모습으로 교회에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의를 향한 열망과 화평에 대한 갈망이 서로 충돌합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묻습는다.
나는 의를 부르짖으며 누군가를 해코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화평를 원한다면서 진실을 비겁하게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상처 입고 신음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런 날을 보길 소망합니다.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는 날을.
기도
의와 화평의 하나님,
진실을 외면하면서 평화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
의를 주장하면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상처 입은 이들의 눈물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사랑과 의를 보여 주신 예수님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