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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편의 삶

시편 84편의 삶

시편 Psalms
84:1-12

성전을 사모하는 자의 복(1-4절)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고라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입니다. 표제어로‘ 고라자손의 시’라고 표제어가 붙은 시편은 모두 11편이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고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레위의 증손자로 모세와는 사촌지간이었습니다. 고핫의 후손 가운데, 아론과 그 자녀들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고라와 그 자녀들은 성막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제사장이 되고 싶었던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 온을 비롯하여 250명을 모아 선동하였습니다. 고라의 생각에 자신과 동일한 족보의 선(같은 항렬)에 있는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고라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구별하여서 주님의 성막에서 일을 하게 하며, 회중들 앞에 세워주셨는데, 그것이 작고 부족하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싶고, 제사장의 지위도 겸하고 싶다는 것이 시위의 이유였습니다. 결국 고라와 그를 따르던 주동자, 다단, 아비람, 온은 입을 벌린 땅에게 삼킴을 당하고 말았고, 250명의 사람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불에 의해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라자손의 시’라고 표제어가 붙은 시편을 읽거나 묵상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시편들이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의 시, 참회의 기도문과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고라 자손들의 시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잘 나타나 있고,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간절함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시편이 더욱 그러합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는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4번(1,3,8,12)이나 나옵니다. 특히 1절과 마지막절인 12절에 나오는데, 마치 이 시편이 ‘만군의 여호와’로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이 시편을 쓸 때의 상황이 평안한 때가 아니라 전시(戰時)와 같은 급박한 시기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때에 고라자손인 시인은 하나님의 성막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성경에는 ‘주의 장막’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소를 복수형으로 표현한 것은 또 다른 곳에도 주의 장막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소를 복수형으로 써도 동사는 단수형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이 ‘엘로힘’입니다. 이 단어도 복수형입니다. 그럼에도 동사는 단수로 받습니다. 이것을 ‘장엄복수(pluralis majestatis)’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거룩함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주의 장막’이 복수로 되어 있는 것은, 성막에 대한 시인의 존경심과 경외심, 애정,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터넷이 연결이 됩니다.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어도 인터넷을 통해서 교회의 예배시간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인터넷이 전무했던 때로 돌아가, 한동안 지방이나 해외에 있게 되었을 때, 또는 병상에서 많은 날들을 보내야 할 때에, 주일이 되면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떠오릅니다. 때로는 아주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여러 학자들은 오늘 시편이 다윗왕의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쿠데타와 같은 사건으로, 다윗왕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 한동안 주의 장막을 찾지 못했다면 시인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1절에서 성막을 ‘주의 장막’이라고 표현했던 시인은 이제는 ‘여호와의 궁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리움이 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모하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창백해지다’이고, ‘쇠약하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끝나다, 멸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찬란하게 빛나는 주님의 장막에 너무 가고 싶어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죽을 것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육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부르짖다’의 원 의미는 ‘진동하다’입니다. 온 몸이 떨릴 정도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장막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또 이렇게 표현합니다.
(3-4)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막을 ‘주의 장막’에서 ‘여호와의 궁정’으로, 이제는 ‘주의 제단’과 ‘주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제단’은 문자 그대로 제물을 드리는 단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주의 제단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나 갈 수 없지만, 당시에 가장 흔하고 가치 없게 여겨졌던 참새나 제비는 주의 제단 근처에 집을 짓고서 마음대로 주의 장막에 머물 수 있으니, 그것을 부러워지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굉장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연예인을 TV를 통해서만 보는데, 그 강아지는 그 연예인과 한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가 그 강아지가 부러워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주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4절)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주님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또 매 주일 예배당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은 정말 큰 복입니다.

성전 순례자의 복(5-8절)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복이 있는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 주님께 힘을 얻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께 힘을 얻는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주님 안에서 힘을 얻는다’입니다. 즉 주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독수리와 매, 올빼미와 같이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보다, 참새와 제비와 같이 스스로에게는 힘이 없음을 알고, 주님을 신뢰하고 사는 사람이 더 복됩니다. 살아갈수록 깊이 깨닫게 됩니다.

둘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시온의 대로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과 같이 절기 때나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주의 장막으로 가는 길이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매 주일과 예배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예배의 처소로 가는 길이 있는 사람은 복 있습니다. 다른 무엇을 얻어서 복이 아니라, 그 길을 가진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시온의 대로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눈물 골짜기가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자의 눈물 골짜기의 지점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눈물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기에 통과합니다. 중년에 통과하는 사람도 있고 노년에 통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눈물 골짜기의 종류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일로 눈물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건강으로 통과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의 일로 인해서 여러 사람들로 인해서 통과합니다.

무엇보다도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그 눈물의 양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흘린 눈물이 샘이 몇 개만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수십 개가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의 눈물샘은 셀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눈물샘의 개수를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나와 주님만 압니다.

우리에게 눈물 골짜기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시온의 대로가 또렷하게 보이고, 그것이 은총과 복임을 알게 됩니다.

(7-8)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눈물 골짜기가 우리를 넘어뜨리거나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그 과정을 통과할 때에, 주님께서 주신 힘으로 인해서 마침내 하나님을 우러러 뵙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주를 의지하는 자의 복(9-12절)

(9-10)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며 시온의 대로를 통해서 주의 제단에 이른 사람은 이 고백을 저절로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고백은 신앙생활이 길어질수록, 연륜이 깊어질수록 깊이 와 닿습니다. 인생이 황혼이 깊을 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문득 깨닫게 됩니다. ‘좀 더 하나님 중심으로 살 걸, 하나님을 좀 더 바르게 섬길 걸’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재미도 없는 것에 왜 그렇게 목을 매었었는지 아쉽게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시인의 고백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11-12)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해’는 만물에게 빛과 열을 공급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어 주시고 은혜를 공급해 주셔서 이 땅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또 ‘방패’가 적의 칼과 창, 화살의 공격을 막아주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가 되시며 피할 바위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증거가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편, 23편처럼 따로 설교하지 않고, 찬찬히 읽기만 해도 가슴 깊이 와 닿고, 저절로 머리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삶의 자리에 심으셨을지라도 그 자리가 낮아 보이고, 눈물 골짜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시온의 대로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10절)”라고 말한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만군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계신 곳이 주님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합니다.
우리의 왕, 우리의 하나님,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우리도 그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주님의 은혜의 비로 심령이 소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힘을 얻게 하심으로 시온의 대로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주님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습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 하나님의 전 문지기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영화를 누리게 하시며, 온전하게 행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이 되어서,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시편 84편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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