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틴 힘, 다시 일어난 힘
시편 Psalms 18: 1-6
시편 18편은 다윗이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뒤 부른 노래입니다. 그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4절)라고 고백할 만큼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16절)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라고 선언합니다.
”나의 힘“은 하나님 그분 자신입니다. 내가 버틴 힘, 다시 일어난 힘, 여기까지 살아온 힘의 이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신앙은 내 안의 강함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약함 속에서도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신 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곧이어 ”내가 주(당신)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깊은 애정이 담긴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사랑하다’(라함)는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단장의 슬픔과 애틋함을 담은 긍휼의 사랑입니다. 보통은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실 때 사용되나 여기서는 다윗이 용감하게 하나님을 향해 사용합니다.
다윗의 사랑은 죽음에서 건지시고, ”나의 흑암을 밝히시며“(28절),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신“(32절) 하나님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올려 드리는 절절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를 통과한 후, 다윗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인격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의 마지막에서 다윗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0절)라고 노래합니다. 다윗의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를 붙드시고 살리신, 그리고 여기까지 이끄신 사랑이 먼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힘은 원수에게서 건져내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힘은 더 놀라운 방식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원수를 쓰러뜨리는 대신 자신을 내어주어 원수까지 품어내는 ‘연약함의 힘’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십자가는 사랑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에게 ”이제 얼마나 강해졌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오직 한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어쩌면 신앙의 마지막 질문도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강했는가,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끝까지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았는가?“
아침에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는 무조건적인 용납의 은혜를 입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상처입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다윗처럼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에 드리는 이 고백이 언젠가 내 인생의 마지막에도 드릴 수 있는 고백이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여기까지 나를 붙드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침마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죽음과 같은 두려움의 순간에도 나를 붙드신 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로 끝까지 인자를 베푸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