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치유가 만나는 자리
말씀: 시편 103편 3절
인간에게는 두 가지 깊은 아픔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겪는 죄책의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질병의 고통이다. 죄책은 용서를 갈망하게 하고, 질병은 치유를 애타게 기다리게 한다.
그런데 시인은 먼저 자기 영혼에게 말을 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절). 시인은 자기 영혼을 마주 앉혀 놓고 설교한다. “그의 모든 은택을 앚지말지어다”(2절). 고통은 오래 기억하면서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영혼을 일깨운다. 그리고 고백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3)
1. 용서하시는 하나님: 죄책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사하시며’(살라흐)라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는 용서의 동사다. ‘죄악’은 인간의 잘못과 죄책을 뜻한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도 멀어지게 한다. 아담은 범죄한 뒤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창 3:8). 죄는 숨고 싶게 만들고, 수치심은 자신을 미워하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오시고 용서하신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죄를 인정하고 책임지면서도 그 죄에 영원히 갇히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2. 치유하시는 하나님: 연약한 인간을 돌보신다
‘고치시며’(라파)도 분사형이다. ‘사하시며’와 함께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역과 성품을 드러낸다. 출애굽의 광야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하나님은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인간은 몸을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질병은 인간의 유한성을 드러낸다. 건강할 때는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병상에서는 자기 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병이 몸을 아프게 할 때, 외로움은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한다.
3. 고쳐지지 않는 날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모든 병을 즉시 고치시지 않을까?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달랐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을 이렇게 노래한다.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잊고 살 때에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치유가 늦어진다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무리하며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막 2:5–12). 용서와 치유가 한 사람 안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이사야는 노래한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십자가의 고통은 피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십자가는 고통 중에도 함께하시는 사랑을, 부활은 죽음조차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용서보다 크지 않다. 우리의 고통도 그분의 사랑 밖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멀리 옮기시고, 먼지 같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다. 그 사랑이 바로 용서와 치유가 만나는 자리다.
기도문
용서와 치유의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연약한 몸을 돌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에 갇히지 않고 용서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게 하소서.
치유가 더딘 날에도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통받는 이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아멘.
By Rev. JChul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