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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폴스처치의 에덴센터

 

버지니아 폴스처치의 에덴센터는 미국에서 가장 ‘베트남다운 거리’ 가운데 하나다. 붉은 기둥과 이국적인 지붕을 넘어서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낮게 흐르는 베트남어 억양, 허브의 알싸함, 푹 고아낸 육수의 향, 갓 구운 바게트의 고소함. 불과 수십 걸음 만에 워싱턴 교외는 사라지고, 사이공의 시장 골목 한복판이 펼쳐진다.

1975년, 남베트남이 무너지던 날 수십만의 사람들이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목숨을 건 바다를 건너 살아남은 이들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렸고, 에덴센터는 그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식료품점과 제과점, 식당들은 상업의 공간이기 이전에, 잃어버린 고향의 숨결을 지키려는 이들의 작은 성소였다. 그 중심에는 노란 바탕에 붉은 세 줄이 그려진 옛 남베트남 국기가 걸려 있다. 보트피플의 비극과, 자유를 향한 서글픈 희망이 지금도 그 아래 아른거린다. 그 역사 한복판에 흥 비엣이 있다.

창업자 하이 후인(Hải Huỳnh) 역시 그 파도를 건넌 보트피플이었다. 1987년,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그는 미국에 도착한 지 단 1년 만인 1988년 에덴센터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고향의 맛만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만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흥 비엣이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그의 아내의 공이 컸다. 200가지가 넘는 전통 요리를 펼쳐내는 그녀의 손끝은 교민의 향수는 물론, 낯선 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그렇게 지펴진 불꽃은 40년 가까운 세월을 태워왔고, 이제는 딸과 사위 닉(Nick)이 그 유산을 이어받아 지키고 있다. 하이 후인은 지금도 이따금 식당에 들러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신이 일군 삶의 터전을 가만히 건너다본다. 여전히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을 고집하는 것도 이 집의 오랜 방식이다. 단골들에게는 그마저 흥 비엣이 지켜온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하이 후인이 먼저 권한 것은 ‘깐쭈어 까봉(Canh Chua Cá Bông)’이었다. 메기 살에 파인애플과 토마토, 타마린드의 신맛이 어우러진 베트남 남부의 생선탕. 한국의 매운탕과는 궤가 다른 국물이었다. 새콤하면서도 시원하게 뚫리는 맛에, 한 숟갈을 뜨자마자 입안이 환하게 열렸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나직이 감탄했다. “이토록 고귀한 신맛이 있었다니.” 생선의 담백함과 허브의 청량함, 타마린드의 상큼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어 나온 ‘반호이 헤오느엉(Bánh hỏi Heo Nướng)’은 실처럼 가는 쌀국수 면 위에 숯불 향 밴 돼지고기와 신선한 허브를 얹어 싸 먹는 요리였다. 여기에 베트남 특유의 매콤달콤한 피시소스(느억짬, Nước chấm)에 돼지고기와 쌀국수를 살짝 찍어 먹으면 짭조름함과 새콤달콤한 풍미가 어우러져 맛의 깊이가 한층 더해진다. 숯불 향을 머금은 돼지고기와 허브의 싱그러운 향, 그리고 피시소스의 감칠맛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마다 입안에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가장 깊은 정서는 ‘카코토(Cá Kho Tộ)’에 있었다. 뚝배기에서 오래 졸인 생선은 가시 하나 없이 부드러웠고, 캐러멜 간장의 짭짤달콤한 풍미가 속살까지 배어 있었다. 흰쌀밥 위에 살포시 얹어 먹는 순간, 화려한 향신료 없이도 세월이 자아낸 깊이를 알게 된다. 워싱턴포스트 음식평론가 팀 카먼이 이 요리를 두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극적인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음식”이라고 쓴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식사의 마침표는 짙은 베트남 드립 커피였다. 한 방울씩 떨어진 정수가 연유와 만나,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운을 남겼다.

흥 비엣을 나선 뒤에도 감동은 오래 길 위를 서성인다. 베트남어 간판들, 갓 구운 바게트의 구수한 향, 진한 연유커피의 잔향. 이곳은 쇼핑센터가 아니라, 미 대륙 위에 피워낸 또 하나의 조국이었다.

여행은 반드시 국경을 넘어설 때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그릇의 국물과 한 잔의 커피가 우리를 전혀 다른 역사의 심연으로 데려간다. 자유를 좇아 바다를 건넜던 한 가족의 꿈은 4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의 식탁을 데워왔다. 흥 비엣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한 끼의 식사가 아니었다. 고향을 잃고도 끝내 그 맛과 존엄을 지켜낸 사람들의 삶이었다.

상호명: 흥 비엣(Huong Viet)
주소: 6785 Wilson Blvd.,
Falls Church, VA 22044
전화번호 (703)538-7110
추천 메뉴: Canh Chua Cá Bông, Bánh hỏi Heo Nướng, Cá Kho Tộ, Bún bò Huế
주차: 쇼핑센터 넓은 주차장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곽노은> -한국일보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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